일간 날돌이, 세 번째 이야기
“이제 바닐라 라떼도 마시네. 원래 아아만 마셨었잖아.”
“응. 애 낳으니까 단 게 그렇게 당기더라.”
날돌이가 은진이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은진이의 결혼식에서였다. 비혼을 노래하던 친구가 앞 동에 사는 남자와 연애 두 달 만에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날돌이는 달력을 확인했다. 혹시 만우절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오백호 씨네 어항에는 그와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초록복어 육백이가 살고 있었다. 작은 어항이 은진이의 가방에 밀려 와장창 깨졌을 때, 육백이도 세상을 떠났다. 화가 나면 몸을 잔뜩 부풀리고 드러눕는 아이인데, 마지막 순간에는 홀쭉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경황이 없어 화를 내는 것도 잊었나 보다.
난장판이 된 바닥을 훔치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은진이는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 작은 물고기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라나 뭐라나. 이후 은진이는 결혼식 당일까지 날돌이가 공감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 친구한테 이런 모습도 있다니.'
은진이는 결혼과 동시에 현모양처가 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사는데도 좀체 만날 수가 없었다. 뭐 하나 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답게 매일 퇴근 후 살림 야학을 하는 모양이었다.
“올해 가기 전에 한 번 보자.”
5년 동안 이 말을 숱하게 하다가 드디어 마주 앉게 된 것이다.
“너네 둘이 절교를 해야 시집을 가지.”
주위에서 놀릴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함께 했는데, 바닐라 라떼를 마시는 은진이는 처음이라 조금 낯설었다.
“결혼을 해도 외롭고, 결혼을 안 해도 외롭고, 인생은 그냥 다 외로워.”
은진이가 호탕하게 웃으며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냐는 듯한 말투가 날돌이를 안심시켰다. 준우의 엄마, 오백호 씨의 아내가 된 후에도 은진이는 여전히 은진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창 대화에 흥이 올라있는데 은진이의 전화기가 울렸다. 준우가 갑자기 열이 나서 가봐야 한다고 했다.
“미안, 앞으로는 자주 보자.”
지켜지지 않을 말인 걸 알았지만 날돌이는 개의치 않았다. 은진이가 허둥지둥 택시를 잡아탔다. 준우 엄마의 얼굴이었다.
어쩌면, 조금 노력하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서로 지켜주는 게 좋은 친구는 아닐까. 하지만 어른이라면 알 것이다. 홍수를 막아내기 바쁜 삶에서 적당한 거리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날돌이가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본다.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왔다. 불현듯 초록복어 육백이가 떠올랐다. 화가 나면 몸을 잔뜩 부풀리고 드러눕는 그 아이. 날돌이는 길을 건너는 대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은진아, 육백이 말이야. 너를 유부 월드로 초대한 그 초록복어. 어쩌면 어항이 깨지기를 기다렸을 지도 몰라. 죽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겠지만. 그래서 걔가 훌쭉한 채로 죽은 거야.’
몇 시간이 흐르고 은진이에게 답장이 왔다.
‘듣고 보니 그렇네. 백호는 아직도 육백이 얘기를 하는데. ㅎㅎ’
열대어가 도심의 어느 작은 집의 어느 작은 어항에서 일생을 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초록복어와 오백호 씨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서 생긴 문제다. 육백이의 죽음도 은진이의 결혼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기 위해 이 말은 하지 않았다. 은진이가 행복하기를.
[일간 날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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