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다. 정치학이 나라를 이해하는 방법
정치학에서 '국가(state)'는 쉽사리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적 공동체를 이뤄서 살며, '국가'가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이 속한 1 티어급 정치적 공동체이기 때문이죠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은 보~통 '국가'를 끼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를 장악하기 위해 서로 어떻게 싸우는지,
'국가'가 스스로의 이름으로 어떤 폭력을 사용하고, 정당화하는지,
사람들이 '국가'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는지,
등등 여러 가지 주제가 보통 '국가'를 끼고 연구가 되고 있답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행위는 제한된 재원을 특정한 이해, 또는 논리를 통해 여러 사람에게 뿜빠이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1 티어급 정치적 공동체인 국가를 빼놓기엔 뭔가 아쉽죠.
'국가'가 이렇게 중요한 개념인 만큼, 정치학에서 이 국가가 과연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규정하는 건 정치학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오늘 주제 나갑니다:
'나라 국(國)'은 땅 위에 벽을 두른 후 창을 들고 그것을 지킨다는 뜻이랍니다. 즉 국가란 어느정도의 땅에 벽을 둘러 점유하고, 창을 들어 밖에서 오는 침입자들 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도 행여나 세금을 안 내진 않을까, 허튼짓을 하진 않을까, 하며 동시에 감시하는 그런 주체인 것이죠.
근데 이렇게 대충 설명하고 넘기기엔 양심에 좀 찔리는 감이 있습니다. 고로, 학술적 글쓰기의 꽃인 유명인의 주장을 인용해보도록 합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국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국가는] 어느 특정 동네에서 자기 맘대로 누구를 때리고 가둬도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인간 공동체다"
따옴표 쓰며 인용을 하니 왠지 글의 품격이 높아진 것 같지요? 하여튼 베버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란 영토를 소유하며 (territoriality), 그 영토 안에서 마음대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monopoly of violence) 주체입니다. 물론 모든 국가가 영토를 온전히 소유하진 않으며, 영토 안에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유일의 주체가 아니기도 합니다. 베버의 정의는 국가가 보통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를 정리한 본보기라고 할까요.
정치학계에서는 국가가 도대체 뭔지에 대한 논의가 베버의 정의를 전제로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국가는 그저 계급이나 민족, 또는 특정 이해관계자들이 장악해 권력을 투사하는 일종의 껍데기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 Jr.)는 본인의 1966년 저서에서 국가가 전근대에서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국가'에 대한 논의를 완전 배제한 채 사회계급 간 갈등의 산물로 봤었죠.
반면 국가가 주도적 사회계급과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주장이 굉장히 편협하다며 국가를 다시 주체적인 객체로 여겨야 한다고 받아쳤습니다. 예를 들어 테다 스카치폴 (Theda Skocpol 1979)은 사회혁명의 원인을 논하며 '국가'는 다른 국가들과 전쟁과 평화 등 다양한 외교관계를 구축하기 때문에 주도적인 사회계급과 분리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배링턴 무어와 테다 스카치폴은 사제관계입니다. 무어가 스카치폴의 박사 지도교수였거든요.)
제자야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정년교수직을 계승중입니다 스승님
지금에 와서는 "국가는 그저 껍데기일 뿐!" 이라는 주장은 어느정도 사장이 된... 건 아니고, 사회적 주체가 점유할 수도 있으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주체와는 크게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는 주체적인 객체일수도 있는... 뭐 그런 좀 더 복잡하고 고도화된 국가의 이해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답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이란 큰 자유민주주의 국가 안에서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했던 미국 남주 주들을 조명한 로버트 믹키(Robert Mickey 2015)가 대표적이죠.
"수탈과 안전보장을 통해 연명한다는 점에서 국가는 본질적으로 조직폭력배들과 다를 바 없다" -찰스 틸리
여러 정치학자들이 국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는 어떤 객체인지 열심히 머리끄덩이 잡고 투닥거리는 동안 다른 부류의 정치학자들은 국가의 '행위'를 국가의 본질로 여겨 그에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찰스 틸리(Charles Tilly 1985)는 생전에 "수탈과 안전보장을 통해 연명한다는 점에서 국가는 본질적으로 조직폭력배들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다음에 따로 다루겠지만, 틸리는 이후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치른다"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국가운영 노선 장악을 위한 다양한 사회 객체들의 '분쟁적 정치활동 (contentious politics)'를 태로우(Sidney Tarrow)와 함께 연구하는 등 국가와 폭력을 떼려야 뗼 수 없는 관계로 여겼습니다.
틸리가 물리적인 폭력에 집중했다면, 제임스 스콧(James Scott 1998)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비 물리적인 폭력성에 집중했습니다. 스콧은 국가는 복잡하게 꼬인 사회를 통제하고 운영하기 위해 서로 복잡하게 얽힌 것들을 다른 객체, 또는 다른 현상으로 분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런 분류작업은 본질적으로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이며, 이러한 행동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면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같은 참극이 일어날 거라 경고했습니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국가가 왜 폭력을 사용하는지에 집중해, 국가운영 역량(state capacity)의 원천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조엘 미그달(Joel Migdal 1988)은 국가는 국가운영 역량 확보를 위해 나라 안 다양한 사회적 객체(종교 세력, 농민 등등)를 상대로 끝없는 주도권 싸움을 벌인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미그달과 비슷하게 아툴 코흘리(Atul Kohli 2003)도 개발도상국의 사회통제 능력을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된 식민잔재 국가운영 역량으로 보아, 고도화된 사회통제 능력을 고도개발의 제일 중요한 요인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제프리 헙스트(Jeoffrey Herbst 2000)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공동체들은 유라시아의 그것과 굉장히 다른 개념 아래 운영된 점을 지적하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내전, 빈곤 등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한 원인을 전통적인 정치적 공동체와 근대적인 국가체제의 괴리에서 찾기도 했지요.
자, 이제 국가가 무엇인지, 국가는 뭘 하는지 대충 알아봤습니다. 그럼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정치학, 그리고 국가 -2-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