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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Mar 28. 2022

내전의 정치, 반란군의 통치

반란과 내전 2: 반군 통치의 성격과 원인


전편에 서술되었듯, 사람은 욕심에 의해, 또는 큰 고충에 의해 무기를 모으고 조직을 만들어 국가권력에 도전합니다. 어느 이유에서건 국가권력의 통치가 자신들의 이해와 충돌하고,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봐야겠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렇듯 국가의 통치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스스로 본인들이 소속한 집단을 통치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른바 반군 통치(Rebel Governance)라 불리는 현상입니다. 




코로나19 검역 격리소에서 근무하는 KNLA 제6 연대 대원 /KNU


반군 통치 (Rebel Governance)


미얀마 카렌족 무장단체인 KNU (카렌 민족연합)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1940년대에 봉기한 KNU는 산하 무력조직인 KNLA (카렌 민족해방군)을 중심으로 조직이 돌아가는 게 사실입니다만, KNU가 관장하는 여러 가지 민간 행정 부서가 해방구 곳곳의 일상생활을 관장합니다. KNU는 인두세, 오토바이 등록세, 통관세 등 세금을 걷는가 하면, 자체적인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며, 보건소를 운영하고, 경찰 조직과 법원을 두어 법치주의를 시도한답니다.

 

저항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KNU의 통치 행정 시스템은 퍽 정교한 면이 많기 때문에 미얀마 곳곳의 반군단체들이 KNU의 시스템을 참고해 그대로 도입하지 않으면, KNU의 행정 원칙과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카렌족에서 KNU와 적대관계인 DKBA (민주 카렌 불교군)*는 KNU의 조세 범위와 세율을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1994년 KNU에서 갈라져 나온 카렌족 무장단체로, KNU가 기독교도를 우대한다는 판단에 승려 우 투자나를 추종하는 불교도 대원들이 이탈해 세운 단체입니다. 미얀마 군부와 연합해 1995년 KNU 본부가 있던 마너플라우, 까우무라 함락에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미얀마 북부의 까친족 무장단체인 KIO (까친 독립기구) 또한 KNU와 비슷하게 촘촘한 통치 행정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그들도 보건, 조세, 교육 시스템을 만든 건 물론이고, 심지어 마이자양(Mai Ja Yang)에 대학교까지 설립했습니다. KIO 산하 학교에서 미얀마 정부 산하 학교로 진학하는 게 무척 어려워 대학 진학길이 막힌 학생들을 위해 KIO 교육과정을 인정하는 대학교를 설립한 것이죠. 


그와 동시에 KIO는 정부군이 통제하는 지역 곳곳에도 청년단체, 교육단체들을 설립하고 종교 단체들과 연대하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이를 통해 청년 지지자를 모집, 교육하고 초급 장교진과 행정 인력을 수급하려는 목적입니다. 이 풀뿌리 단체들을 통해 어찌나 뿌리가 깊은 지지세를 다졌는지 현지엔 "기독교인이라면 모두가 까친 사람이고, 까친 사람이라면 모두가 KIO 대원이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 분위기 덕에 2013년엔 KIO 대표단이 정부군과 휴전협상을 위해 주도 미치냐를 방문하자 온 도시가 들썩이며 열렬한 환영을 해주기도 했답니다. 


* 사실 모든 까친 사람들이 KIO를 지지하는건 아니고... KIO가 까친족 중 징포족 중심주의를 알게 모르게 표방하는 것이 불편한 비 징포 까친 부족의 경우 KIO를 크게 지지하지 않는 편입니다. 라왕, 리수족이 대표적입니다. 리수족의 경우 KIO에 저항하기 위해 친군부 민병대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마이자양 대학교 졸업식 장면. 제 친구 중 하나도 여기 졸업했습니다 ^^; /Mai Ja Yang College
KIO 대표단을 맞는 미치냐 주민들. 정부군이 통제하는 저 자리에서 흔드는 깃발은 무려 KIO 깃발입니다(...) / Kachinland News


싸우기도 바쁠 텐데... 누구를 위하여 통치를 하나


이러한 반군 통치는 사실 쉽게 수긍이 가는 것보단 의아한 점이 더 많습니다. 먼저 전쟁을 위한 물자와 인력도 부족한 마당에 민간인들과 협동하는 반군 정치는 큰 행정력 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일례로 한국전쟁 시기 남한 빨치산은 패색이 짙어져 산으로 올라갈 때 등사기(!)를 챙겨 진지 안에 인쇄소를 마련했습니다. 한국 군경에 포위돼 한 사람이라도 총을 들고 싸워도 모자랄 판에 기어이 삐라와 교육 교본을 인쇄하기 위한 장비를 챙긴 겁니다. 물론 등사기를 챙겨서 패배했다고 말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남한 빨치산은 1954년 초까지 모두 소탕돼 한국에서 모든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통치행위는 종종 통치를 받는 주민들로부터 큰 저항을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공내전 중 중국 공산당의 해방구 조성과 토지개혁 시도는 그 행위의 급진성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로부터 큰 저항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몇몇 지역의 해방구에서는 중국 공산당 중심의 통치행위가 아니라 마을 유지들과 협치를 시도하는 굉장히 느슨한 점령이 이뤄졌습니다. 저항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의 직접적인 통치를 포기하고 농촌 통치구조와 타협을 꾀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현존 지배구조와 충돌하는 반군단체의 직접적인 통치체제는 큰 행정력과 무력의 낭비를 가져오게 됩니다.


인도 동북부에서 활동하는 NSCM-IM의 세금 납부 영수증. 위급한 상황에 이렇게 행정력을 발휘하는 건 자원낭비 아닐까요? / Thakur and Venugopal 2019


따라, 모든 반군단체들이 통치행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 KNU, KIO와 같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해방구를 조성하는 반군단체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네 한국전쟁 시절의 남부군처럼 정말 도적떼처럼 통치행위 없이 산과 숲을 전전하며 활동하는 반군단체들도 있답니다. 미얀마만 놓고 보더라도 TNLA (탕 민족해방군) 같은 단체는 해방구 조성이 아니라 주변의 지원을 받으며 게릴라 유격전 중심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군 단체들이 전략적인 판단을 통해 직접적인 통치행위를 할지, 아니면 통치 행위를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죠.


그럼 반군단체들이 어떤 이유로 통치행위를 시도하는 걸까요? 사실 계속 논의와 연구가 이뤄지는 문제기 때문에 딱 떨어지는 설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튜어트 (Stewart 2021) 등 한 부류의 정치학자들은 반군단체 스스로의 신념이 반군단체가 통치행위를 시도할지를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로 여러 가지 예시를 듭니다만 사실 공산주의가 시뻘겋게(...) 살아있을 시절 사회주의 계열 반군이 그들의 이념을 따라 해방구를 만들고, 사회주의 가치를 담은 통치구조를 만들려고 했던 것에 주목을 했었죠. 카스피르 (Kasfir 2005)는 아프리카 반군단체들을 연구하며 단체의 이념적 가치에 따라 군사적으로 큰 위기에 빠졌어도 끝끝내 풀뿌리 기반 정치를 시도하고, 마지막까지 민간인들의 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단체들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더불어, 반군이 정부 통제구역에서 스스로 통치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정부군을 엿 먹이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점을 짚기도 합니다. 아살 플라니건과 스제켈리 (Asal, Flanigan, Szekely 2020)는 반군이 스스로 행정력을 발휘해 직접통치를 시도하는 것은 사실 국가 정부의 권위와 통치구조를 무너뜨리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 반군 단체들은 중앙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지역보다는 오히려 중앙정부가 오랫동안 군림해 통치하고, 행정 인프라를 잘 갖춰놓은 지역에서 더 자주 직접통치를 시도한다고 합니다.


라테다웅에서 보건 지원을 하는 아라칸 군 간호장교. 아라칸 군은 아라칸 주 대부분 지역에서 행정 임무와 사법 보호를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Frontier Myanmar


마지막으로, 어쩌면 통치행위 자체가 반군단체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그 존재 의의를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통치행위는 근본적으로 민간인으로부터 재원을 빼앗아 가는 대가로 교육, 행정, 보건 등 공공재를 배분하는 행위입니다. 정치권력은 통치를 통해 (그들이 삥을 뜯어가는) 피지배민들에게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면 (Tilly 1985) 주민들 간 분쟁을 해소하고 공평한 거래가 이루어지게끔 심판을 보기도 합니다 (Milgrom, North, and Weingast 1990). 


아마드(Ahmad 2017)는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연구를 통해 내전지역의 주민들은 그들의 안위를 위해 정부군을 포함한 다양한 무장단체들을 비교해 그들에게 제일 큰 이득을 주는 단체에게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어쩌면 반군단체들은 생존을 위해 그들이 주민들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계속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을까요?


다른 한편으론 반군 단체들은 통치 행위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지역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재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반란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다른 이유보다는 자기가 정의로운 편에 서 있고, 그리고 무장투쟁을 통해 자기 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위해 반란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Wood 2003). 


이러한 명분을 위해 투쟁에 나선 사람들에게 이웃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되돌려주는 행위는 그들이 진정 "의로운" 편에 서 있고, 지역 이웃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재확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22년 초 로이까우 공방전 중 도시를 떠나는 피난민의 짐을 옮겨주는 로이까우 인민방위대 병사/ PDF Loikaw




(커버 이미지: KNU 관할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카렌 어린이들  -Karen Education and Culture De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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