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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Mar 29. 2022

만두박사, 현장연구 출동하다

"Something ends, something begins"

"1-3년 차 학생만 초대합니다"


때는 2021년 가을, 토론토도 코로나19 판데믹의 충격을 조금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저는 연구제안서가 통과된 친구들끼리 모여 다들 현장연구 전 마지막으로 참가할 학과 모임에서 뭘 들고 갈까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토론토 대학교 정치학부는 1년에 한두어 차례 세부 전공별로 학생과 교수님들이 각각 음식과 술을 싸들고 파티를 벌이는 모임을 주최합니다.


겉으로는 업무의 연장이라며 다들 가기 싫어하는 것 마냥 얘기하지만, 사실 저녁 늦게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술과 음식과 함께 한 자리에서 학우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속으론 모두들 큰 기대를 하고 있는 빅 이벤트입니다.


모두 희망에 부푼 마음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던 도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올해 모임은 코로나19 리스크 관리를 위해 1-3년 차 학생만 초대한답디다.


학과 독서실에 모인 고학년 아저씨들 분위기가 침울해집니다. 지난 2년간 숨어있느라 정말 손꼽아 기다린 학과 모임인데 고학년은 오지 말라니요.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우리가 저학년일 때는 고학년 선배님들 우르르 몰려와서 물을 흐리는(?) 모습이 참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는데, 막상 우리가 고학년이 되니 저학년 친구들을 못 보는 게 참 아쉽습니다. 물론 다들 학과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백번 이해합니다. 우리는 삐지지 않았습니다.

송곳 中. 나만 삐진 건 아닐 거예요 다들 같은 상황에 처하면 똑같을 거야...


다들 어쩌면 장학금 축내지 말고 얼른 논문 쓰고 졸업하라는 계시일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다들 현장연구를 갈 채비를 더 빠르게 시작했습니다. 


만두박사 학과에서 쫓겨나는 순간입니다.




인간 참여 연구 윤리심사


물론 쫓겨났다는 생각에 홧김에 서방질하듯 현장연구를 준비한 건 아니랍니다. 연구제안서가 통과된 직후 현장연구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같이 내전 연구를 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도교수님 (충성 충성 ^^7)이 총괄하는 연구소에 자리를 잡기도 했고, 또 많은 연구자들이 학을 떼는 인간 참여 연구 윤리심사(Human Ethics Protocol Review)를 끝마치기도 했습니다. 토론토 대학 정치학부에서는 줄여서 Ethics Protocol (윤리심사)이라 부르기도 하고,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연구윤리심사위원회 (Research Ethics Board)의 약자를 따 REB라고 부르기도 하는 절차입니다.


연구자는 REB를 통해 뭘 연구하려고 하는지, 이 연구가 연구자와 연구 참가자 모두에게 어떤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위험을 어떤 방법으로 최소화할 것인지, 그리고 여러 가지 위험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연구가 수행할 가치가 있는지를 심사받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연구 참가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그들의 개인 정보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그리고 연구가 끝난 후에도 참가자들의 인격과 존엄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게 된답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제 연구 참가자들은 내전에 직접 가담한 사람들로, 정체가 드러나고, 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구체적으로 노출되면 작게는 징계, 크게는 피살까지 각오해야 하는 무척 큰 위험을 안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개인 정보 보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접촉하는 절차도 참가자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한답니다.

물론, 반군단체들보단 미얀마 군부가 더 무섭습니다.


보통은 6-8주 정도 걸리는 절차입니다만, 제 연구 주제는 리스크가 굉장히 높았던 관계로 심사위원과 여러 차례 키배 수정 작업을 거치느라 그보다는 더 긴 5-6개월의 심사과정이 소요됐습니다. 


이 쯩 하나 받으려고 몇 달이 걸렸습니다 ㅎ_ㅎ


짧게 요악하니 쉽고 간단한 절차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지금은 심사가 통과돼서 여유롭게 회상이 가능한 거지, 심사위원의 지적대로 신청서를 수정하고, 수정하지 못하는 부분은 왜 수정할 수 없는지 소상히 설명해 보내고, 또 몇 주를 기다려 다시 심사위원의 답신을 참고해 또 수정하고... 하는 절차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만 압니다. 그에 덧붙여 현장연구 중 코로나19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건지에 대한 별개의 심사도 함께 준비해 이뤄졌습니다. 그나마 이 심사는 빠르게 통과했습니다.


지도교수님도 이 절차에 어찌나 학을 뗐는지 학과 방침을 조용히 무시하시곤 "만두박사, REB는 내버려 두고 일단 태국으로 먼저 가도 괜찮아"라 하시며 등을 떠미셨습니다(...) 사실 고백건대 REB 승인 자체는 태국에 도착하고 나서 결정됐답니다. 서둘러 나오느라 연구비 수급도 뒤로 미뤘고, 요즘 한참 값이 내려간 주식들을 눈물을 뿌리며 처분 한 돈으로 최소한의 여비를 마련했습니다.


교수님의 기진맥진함을 출동 신호로 삼아 태국으로 향합니다. 중간 경유지는 치앙마이. 최종 목적지는 태국 국경지대입니다.




"우리가 이기는 날에 다시 돌아와"


치앙마이를 내려다보는 도이 수텝은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답니다.

하루를 비행해 태국에 도착하고, 현지에서 PCR 검사를 받고 격리 후 또 하루를 더 보내 기어이 치앙마이에 닿았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찬 도시였던 치앙마이는 다시금 한적한 지방도시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 같습니다. 판데믹으로 인해 태국 관광산업이 무너진 여파가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치앙마이에 짐을 풀자마자 알선받은 여러 사람들에게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너무 감사하게도 캐나다에서 갓 도착한 어린애에게 큰 신뢰를 보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접선할 수 있으니 있는 힘껏 도와주겠다는 그분들의 믿음 덕에 현장연구의 첫 발을 아주 수월하게 뗄 수 있었습니다.


쿠데타와 군부의 코로나19 봉쇄 때문에 여행길이 막힌 한 친구는 미얀마는 언제 오냐는 뜻을 담아 "야 요즘 치앙마이 좋냐? 양곤보다 낫냐?"라고 물어왔습니다. 쿠데타 정국에 큰 곤란을 겪었다가 이제 다시 어느 정도 일상생활로 돌아온 친구 '수' 도 비슷한 의미를 담아 문자를 보냈답니다.


- "그래서 미얀마는 언제 옴?"


-"그러게. 일단 군부가 의무 격리를 풀어줘야 갈 수 있을 거 같아. 요즘은 좀 어때? 좀 괜찮아졌어?"


-"이미 알다시피 모든 게 다 너무 안 좋아. 우리가 이기는 날에나 다시 돌아와"


지금도 미얀마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현재 미얀마는 법치주의가 상당 부분 무너졌기 때문에 제 안전을 담보받지 못해 들어가지 못하는 부분이 크답니다. 연구자, 기자, 그리고 반군부 단체와 접촉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도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있기도 하고요. 저도 미얀마 친구들과 연결된 SNS로는 미얀마에 대한 포스팅을 자제한 지 오래입니다.


어찌나 상황이 어그러졌는지, 치앙마이에서 제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미얀마 군사정보부(MIS)가 치앙마이에서 활동하는지에 대한 여부였습니다. 다행히 태국에서는 MIS를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좋다고 합니다. (되려 제가 CIA처럼 보이는 걸 더 조심해야 할 거라는 좀 다크한 농을 들었습니다)  물론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 건 똑같습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자세한 이야기는 모두 빼놓고 연락을 주고받지만, 아마 수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언젠가는 다시 들어갈 수 있겠지요?




물론 치앙마이의 Nong Bee's 버마 식당은 아직도 열려 있습니다. 있다가 또 가서 먹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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