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너머의 말들

언어의 장벽

by 이단

4월 스케줄이 배포되었고, 중국행 비행이 무려 나흘 연속으로 배정되었다.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회사가 중국 산둥성의 지난 국제공항으로 신규 취항하게 되었다. 이번이 처음 가보는 중국은 아니다. 예전에 하이난성의 충하이 보아오 공항으로 단 한 차례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그 외에는 중국 영공을 통과한 적만 있을 뿐, 조종사로서 중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낯설었다.


항공 강국인 미국과 유럽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미터법(Metric)보다 야드파운드법(Imperial)을 항공 분야에서 주로 사용한다. 이 단위 체계에서는 고도는 피트(feet), 속도는 노트(knot, 해리/시), 무게는 파운드(pound)로 표기된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방식이지만, 일반 생활에서 미터법을 사용하는 나라들도 항공 분야만큼은 대부분 야드파운드법을 따른다. 우리나라 항공분야도 마찬가지이며 이는 조종사들에게 매우 익숙한 단위이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는 항공에서도 자국의 단위(미터법)를 고수한다. 이는 여러 나라의 하늘을 오가야 하는 조종사들에게 꽤 성가신 요소다. 실제로 중국에서의 비행 경험이 있는 선배 기장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중국에서는 고도 침범으로 인한 항공법 위반 사례가 다른 지역보다 자주 발생하고, 그에 대한 제재도 더 강하다고 한다. 이런 기본적인 불편함이 내재되어 있어서인지 중국행 비행은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인천에서 지난으로 향하는 항로에는 비행금지구역인 서해 5도 상공을 지나며, 잠시 북한 땅이 눈에 들어온다. 이후 서해를 건너 칭다오를 지나 지난으로 향하게 된다. 중국 상공을 비행할 때면 늘 지평선이 멀리 펼쳐진다. 고고도를 비행하면 대개 해안선과 육지가 함께 보이기 마련인데, 중국은 땅이 워낙 넓어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지평선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비행시간은 약 1시간 반 정도로 짧은 편이지만 그에 비해 긴장감은 결코 짧지 않다. 경력 많은 기장조차도 비행 중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느껴진다.


중국 영공에 진입하면, 우리는 단위 환산표를 꺼내 든다. 관제기관으로부터 미터 단위로 지시받는 고도를 매번 피트로 환산해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 민항기는 장비와 지상 레이더의 발달로 인해, 가장 붐비는 순항 고도 구간에서 비행기 간 수직 분리를 1,000피트(약 300미터)로 줄여 운항할 수 있다.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는 육안으로도 어떤 기종인지, 어느 항공사인지 식별이 가능할 정도다. 우리는 이런 고도 구역을 RVSM(Reduced Vertical Separation Minimum, 수직 분리 축소) 공역이라 부른다.


RVSM 공역에 들어서면 더욱 집중해야 한다. 지시받은 미터 고도를 피트로 정확히 환산하지 못하면, 300미터 남짓한 수직 분리 내에서 사고나 준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기장과 부기장은 각자 고도를 환산하고, 서로 같은 값을 확인한 후에야 항공기를 상승 또는 강하시킨다.


약 한 시간쯤 비행했을 무렵, 멀리 지난 공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 취항한 공항이라 그런지 관제탑의 관제사는 연신 우리 항공사의 공식 호출부호(Callsign)를 다시 확인해왔다. 그렇게 긴장감 속에 착륙과 주기(parking)가 무사히 완료되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승무원이 단체 명단만 제출하면 별도의 입출국 수속 없이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적어도 이 공항만큼은 모든 승무원이 직접 입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Immigration으로 이동해야 했다. 입국장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코로나19 임시 검사소가 여전히 설치되어 있었다. 팬데믹 시절,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중국 공항에서는 독특한 냄새가 났다. 약초 향과 섞인 듯한, 약간 퀴퀴한 냄새였다.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러려니 하며 입국장으로 향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였을까? 여권을 내밀고, 얼굴을 스캔받는 짧은 순간. 그 과정이 낯설고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반면, 코로나 이전 10여 년간 중국에서 비행해왔던 기장님은 유창한 중국어로 직원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낯선 곳에서 모국어처럼 언어를 사용하며 길 안내를 받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비행기로 돌아와 Towing(견인)을 준비하던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기장님은 지상 직원들과 능숙한 중국어로 소통했고, 흐름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세부적인 대화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들이 영어 사용을 일부러 피하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단위까지도 자국의 체계를 고수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도 관세전쟁으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강대국 간의 반미·반중 정서가 항공 현장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외국에 나와 공항 출입국 절차를 밟는 일이 이토록 답답하게 느껴졌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단순히 낯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삼 느껴지는 언어의 장벽이 오늘따라 이토록 높게 느껴졌을까…? 한편으로는, 코로나 이전부터 중국 시장에 뛰어들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넘게 이곳을 오간 선배 조종사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들었다. 과연 내가 이 공항을 벗어나 지난의 도심으로 들어가면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언어의 장벽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흘간의 중국행 비행이 끝났다. 처음엔 불편하고 긴장됐던 중국행이었지만, 비행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역시 무엇이든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곧 두려움을 없앤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엔 그 벽이 남아 있다. 언어라는 장벽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낯선 문화, 다른 체계, 익숙하지 않은 방식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작고 조용한 불안감. 그것은 때로 거친 기류를 통과해야 하는 Fight deck(조종석)의 고독한 싸움과는 사뭇 다른 고독함을 느끼게 하는 처음 마주하는 종류의 장애물이었다.


하늘은 연결되어 있지만 사람 사이엔 여전히 벽이 있다. 그 벽 앞에서 나는 다시 배우고 다시 익숙해지고 그 벽을 넘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륙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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