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0피트에서 찾은 평범함

by 이단

처음 항공사에 입사한 후 회사 소개교육을 받을 때 교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 이것이 앞으로 조종사 생활을 하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할 것이라고. 이전 직장에서 무엇을 하다 왔든 앞으로 살아갈 세계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세계일 것이라고.


수없이 상상하고, 끊임없이 꿈꿔왔던 순간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까?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조종하는 것이 즐겁고, 누구보다 조종사 생활이 적성에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나긴 훈련이 끝나고, 꿈에 그리던 부기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훈련이 끝난 것은 연말 즈음... 방학이 막 시작될 시기였다. 정식 부기장이 된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이른바 업계의 성수기를 마주한 것이다. 초보 부기장에게 성수기의 살인적인 스케줄은 정말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눈을뜨면 내가 한국에 있는지 베트남에 있는지,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날이 많았다.


연일 새벽비행이 있는 주에는 특히 힘들다고 느꼈다. 스케줄별로 조금씩 다르나 출두(Show up)를 위해서는 꽤나 이른 새벽에 눈을 떠야 했다. 그렇다고 매번 일찍 잠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각종 수면보조제의 도움을 받아 잠을 청하지만, 평생 출근시간에 쫓기며 살아본 적이 없던 나에게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이지 않으면 수백 명의 여정을 망칠 수 있다는 부담감은 오히려 잠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종종 Show up 시간에 늦어 난처함을 겪게 되는 악몽을 꾸기도 하였다.


같이 수료했던 동기들 중 나를 포함한 몇몇은 첫 몇달 정도는 링거 투혼으로 근근이 버텨냈다. 부족한 잠과 건조한 기내, 그리고 초보 부기장으로서 이겨내야 하는 조종석의 긴장감은 정말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게 만들었다. 조종사가 된 것이 너무 좋았지만, 아직은 그 기쁨을 충분히 만끽할 정신이 없었다.


실전에 투입된 우리를 누군가 일일이 챙겨주지 않았다. 스스로를 돌봐야 했으며 낯선 땅의 이름 모를 호텔 방에서도 잘 자야 했고, 남들이 잠에 들 시간에도 벌떡 일어나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한국에 도착했을 때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안전하게 착륙할 줄 알아야 했다. 이제는 좀 적응했지만, 만나게 되는 기장님들은 모두 성향이 달랐다. 아무리 조종석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원래 사람과 어색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각기 다른 성향에 맞춰가는 것도 나름의 스트레스였다.


정신없이 지친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문득 입사교육 때 교관님께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언제든지 회사의 부름에 따라 수백 명을 태우고 밤낮없이 떠올라야 했다. 기내는 건조했고 기관지는 연신 망가졌다. 처음 보는 기라성같은 기장님들은 뉴비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일이 끝나도 타지에 놓이는 경우도 많았다. 주어진 체류비로 말이 통하지 않는 식당에서 현지의 음식으로 배를 채울 줄 알아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다... 이제는 일본에 가면 꼭 낫토를 사오고, 동남아에 가면 두리안을 찾는다. 잠에 들지 못할지언정 쇼업 시간 10시간 전에는 꼭 눕는다. 새벽비행으로 한국에 와야 할 때는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서 운동 후, 발마사지를 받고 잠에 든다. 호텔 로비 쇼업으로부터 최소한 다섯 시간 전에는 눕는다... 알게 모르게 나만의 루틴이 제법 생겼다.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변화에 적응하고 있었다. 일을 하며 즐거운 순간들을 최대한 만들려고 노력한다. 수십 년은 더 해야 할 나의 직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다면, 그만한 것도 없지 않을까. 그렇게 30,000피트 상공의 작은 사무실은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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