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이지만, 결코 무조건이라 말할 수 없는 이 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결정이 필요한지 나는 업계에 발을 들인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항공기 운항 편수는 186,784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500편이 넘는 항공기가 하늘로 오르고, 또 다른 수백 편이 우리 땅을 향해 날아온다. 그 수치는 어쩌면 단지 숫자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하나하나가 ‘수많은 변수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평온’이라는 걸 조종석에 앉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비행기는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춰 설 수 없다. 엔진을 작동하고 푸시백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종사들은 연속되는 비행의 흐름 속에 놓여진다. 활주로에 진입하고, 이륙을 위해 속도를 높이며, 기체가 지면을 박차고 떠오르는 그 순간부터 착륙해 활주로를 벗어나기까지, 비행은 단 한순간도 멈춤 없이 이어진다. 하늘이라는 유동적인 3차원의 공간 속에서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며 판단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기상 변화, 관제 지시, 기체 상태, 주변 교통량 등 모든 상황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며, 그 어떤 것도 미리 예단할 수 없다.
비행교육을 받던 시절 교관이 말하길, 착륙은 ‘비행의 꽃’이라 하였다. 비행의 전 과정 중 가장 밀도 높은 구간이며, 동시에 가장 집중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이 때문에 항공기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속도를 줄이고, 활주로 중심선을 맞추며, 바람과 기체의 반응을 조율해 지상과의 마지막 연결을 완성하는 일. 그 착륙이라는 단 한 장면 안에 순간순간의 판단력과 정교한 조종 기술이 응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기술과 판단은 수많은 훈련과 실제 비행의 경험 위에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다. 마치 잘 조율된 악보처럼, 반복된 훈련과 축적된 감각은 예상치 못한 악기상 상황에서도 조종사가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한 기준이 되어준다.
한 번은 강풍과 비, 그리고 난기류가 뒤섞인 악조건 속에서 착륙을 시도하던 순간이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는 뿌옇게 흐려지고, 기체는 계속해 미세한 흔들림을 반복했다. 긴장을 놓을 수 없던 그때, 기장님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차분하게 조종간을 조율해 나갔다. 러더와 컨트롤 스틱을 섬세하게 다루며 항공기를 활주로 중심선에 정확히 내려 앉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도감과 함께 그저 조용히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 착륙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수천 번의 훈련, 축적된 감각, 그리고 책임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제는 그 치열한 순간의 일부가 된다는 마음으로 조종간을 잡는다.
불빛이 깜빡이는 활주로를 향해 하강할 때, 조종석의 공기는 더욱 팽팽해진다. 조심스럽고도 정교한 조작 끝에 바퀴가 땅을 디디는 순간,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모든 게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풀리고, 몇 시간 동안 이어졌던 긴장감이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그제야 비로소 피로가 몸을 타고 흐른다. 복잡했던 공기 흐름, 무심했던 기류, 끊임없이 이어졌던 교신… 모든 것이 멈춘 지금에서야 ‘오늘도 우리가 잘 해냈다’는 생각이 조용히 찾아온다.
지상 유도로를 따라 주기장으로 이동할 때면 활주로의 불빛은 점점 멀어진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치열하고도 선명했던 목적지는 이제 다시 일상 뒤로 물러나고, 다음 비행을 위한 새로운 루틴이 시작된다.
지금도 수천, 수만 대의 항공기가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모두의 목표는 단 하나. 그저 무사히, 그리고 조용히. 누구도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평범하게.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