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s on board

by 이단

승객 탑승을 마치면 객실 사무장에게서 연락이 온다.

“Infant(유아) 3명 포함, 탑승객 180명 확인되었습니다. 도어클로즈 하겠습니다.”

기장이 답하면, 나는 서류상 탑승객수를 확인하고 무의식적으로 복창을 한다.

“180명 확인했습니다.”


바쁜 칵핏 속 보고는 정확하고 간결할수록 좋다.

늘 그래왔고, 별다른 감정 없이 그렇게 지나간다.


며칠 연속 비행이 이어지면 정신없이 출근해서 조종하고, 착륙하고, 퇴근하는 날들이 반복된다.

바람이 셌던 날에도 연신 좌석벨트 사인을 켰다 껐다를 반복할 뿐, 기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승객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임무를 수행하고 내려오는 느낌이다.


사람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잘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항공보안법상 조종실은 기내와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조종실 도어는 비행 내내 닫혀 있고, 승객은 탑재서류 속 숫자나 안내방송을 통해서만 확인될 뿐이다.

그렇게 단절된 채 조종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사람’이 아닌 ‘탑승객 숫자’로만 인식하게 된다.


하루는 도쿄에서 돌아오는 비행이었다.

별 탈 없이 착륙했고, 비행기를 주기시킨 뒤 서류를 정리했다.


정리를 마친 뒤, 여느 때와 같이 브릿지를 통해 공항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가는 길에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펴고 있었고,

아빠는 아기를 안은 채 부인의 짐까지 챙기고 있었다.

아기는 잠에서 막 깬 얼굴이었고, 담요가 한쪽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부부가 끌고 있는 캐리어가 두 개나 되어 보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다가가 하나를 들어줘야겠다 싶었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잠깐 멈췄다.


‘아, 이 사람들이 정말 타고 있었구나.’


그때 처음, 그 숫자들이 하나하나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두 목적지가 있었고, 사연이 있었고, 이 비행기를 타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작고 여린 것들이 이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는 걸, 이 비행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실감했다.


나는 그저 그들의 하루 한 조각을 지나쳐간 것이다.


그 이후에도 탑승 보고는 여전하다.

“Infant(유아) 2명 포함하여 탑승객 180명, 확인되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복창한다. 그 숫자는 여전히 숫자 그대로 들린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달라졌다.

눈앞에 객실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안에 있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누군가의 피곤한 표정, 누군가의 긴장된 손끝, 그리고 설레는 눈빛까지.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같은 일을 하는 부기장이다.

조종실 안에서 비행과 필요한 절차를 수행하고, 임무를 다한다.

때로는 이착륙을, 때로는 교신을 하며 해야 할 일을 수행한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조용한 자각이 생겼다.

우리가 싣고 가는 건 단순한 숫자만이 아니라는 것.

180개의 여정과 감정, 그리고 사연이

이 작은 하늘길 위에 함께 올라 있다는 것.


그날 이후로, 숫자가 조금 더 무겁게 들린다.

그리고 그 무게가,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뮬레이터 훈련 중에도 비상선포를 할 때면 수없이 반복했던 문장이 있다.

“Mayday, Mayday, Mayday… 180 souls on board.”


말 그대로 ‘탑승자 수’가 아니라

180명의 영혼이 타고 있다는 의미다.


비상 상황에서도, 그 숫자 속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는 그걸 자주 잊고 산다.


이제는 숫자를 들을 때마다 한번 더 생각한다.

비록 마주치지 않지만, 뒤에 타고 있는 사람들.

유모차에 앉아있던 아이를 한 번 더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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