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대화하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간다.
군 복무 중에도, 경찰관으로 근무할 때도, 그리고 조종사로 일하는 지금도 원칙과 신념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한다.
사람들은 외부의 의견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내가 경험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주변의 반응이나 권위 있는 목소리에 의존하거나, 상황에 따라 판단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꼭 달변가가 아니어도, 목소리가 좀 큰 사람의 말이라면 그것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음에도 옳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다.
때로는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항상 타인의 의견을 기대하고 의존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충돌을 피하려는 목적일까, 단순히 결정의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그 의견이 곧 정답처럼 받아들여진다.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자신의 기대, 가치, 필요와 같은 판단 요소들은 배제되곤 한다.
이는 심리적 안정이나 사회적 공감대를 우선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도 과거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것을 우선시했던 시기가 있었다.
반면, 소신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형성하는 데 있어 타인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우선시한다.
불충분한 근거나 감정적인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판단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소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의견을 형성하기까지의 사고 과정, 정보의 수집과 검토, 경험을 통한 자기 검증 등이 핵심이다.
즉, 충분한 고민과 학습, 그리고 실천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입증해본 사람일수록 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다.
이러한 사람들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의 기준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수용할 줄 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소신 있는 사람의 삶은 자기주도성과 일관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바람직하거나, 무조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다는 확신은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근거 중심의 사고가 지나치게 고착되면 인간관계에서의 융통성을 해칠 수도 있다.
일상에서조차 논리적 설명이 부족한 말은 모두 무시하거나 비판적으로 대하는 경우,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공감 능력마저 약화될 수 있다.
또한, ‘소신 발언’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에게 직접적인 불편함이나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가령, 특정 외모나 생활방식에 대해 직설적인 지적을 하며 이를 자기 신념이라 주장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타인의 권리 침해가 될 수 있다.
이는 배려 없는 소신이며,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언사이다.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들의 생각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국, 소신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사고의 결과이자 책임 있는 태도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그 소신은 오히려 독선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배려 없는 소신은 협력을 저해하고,
소신 없는 배려는 자기 기준을 상실하게 만든다.
정답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확실함 사이에서 우리는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개인의 기준과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