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장 인정심사
익숙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잠을 잔 걸까?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게 몇시였더라…
회사 규정상 ‘Check ride’(부기장 인정심사)가 있는 날엔, 원래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야 한다.
새벽같이 알람을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인정심사는 필기, 구술, 비행평가까지 이어진다.
입사 후 10개월간 훈련을 거쳐 마침내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있었다.
마음 편히 발 뻗고 잔 날이 있었던가.
하루하루가 압박과 부담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모든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날이었다.
어떤 질문을 받을까.
기상은 괜찮을까.
내 컨디션은?
잠을 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은, 무엇보다 완벽해야 했다.
2016년 4월, 첫 비행.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이제야 진짜 ‘에어라인 조종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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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을 걷자, 집 앞 도로에 안개가 자욱했다.
가을 아침, 일교차가 크면 늘 이렇다.
기상 실황과 예보를 보니, 부기장이 이륙할 수 있는 최저 시정조차 만족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길 바랐던 그날.
아침부터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출근길에도 혼잣말로 구술시험을 복습했다.
평가관은 하필이면, 훈련 내내 개인적으로 가장 부담스러웠던 교관님.
‘FM 기장님’으로 불리던 분이다.
원래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야 했지만,
두 시간 일찍 브리핑실에 도착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불 꺼진 실내, 고요한 공간.
혼자 불을 켜고 앉으니, 기성 부기장들이 당당히 브리핑하며 비행 나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토록 부러웠던 그 자리.
오늘로써 그 자리에 설 수 있을지 결정된다.
테이블 위엔 지난 60회 비행의 평가기록, 2016년부터 취득해 온 비행면장, 항공신체검사 결과지 등을 정리해 올려놓았다.
평가관을 마주했을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편하게 하세요.”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한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비행평가를 위해 게이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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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개는 여전히 걷히지 않았다.
시정은 오히려 더 나빠졌고,
부기장 기준은커녕 출발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비행은 지연됐다.
그날의 칵핏엔 세 명이 있었다.
기장, 부기장, 평가관.
보통 평가관은 뒷좌석에 앉아
앞 좌석의 조종을 지켜본다.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시간은
오히려 늘어졌다.
우리는 한 시간 가까이 기내에서 대기해야 했다.
날씨가 조금 호전된 후에야 출발이 가능했지만,
그마저도 부기장이 이륙할 수 있는 기준은 넘지 못했다.
기장님이 직접 이륙을 담당해야 했다.
나는 가능하다면 가는 편에 평가를 받고 싶었다.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마음 편히 있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기상은 도와주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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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오사카 간사이 공항.
비교적 짧은 거리의 국제선이었다.
다행히 간사이 공항은 시정도 좋고, 트래픽도 많지 않았다.
평가관은 물었다.
“착륙은 간사이에서 평가해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8년의 비행을 단 한 번의 착륙으로 평가받을 수는 없겠지만,
오늘 내 마음은 마치 이 한 번의 랜딩이
‘에어라인 조종사’로서 자격을 증명하는 마지막 퍼즐 같았다.
부담감은 컸지만,
기상 지연 중에 지상에서 나눈 대화 덕분에
오히려 조금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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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은 멀리서부터 잘 보였다.
고고도에서부터 계획했던 대로 서서히 접근을 시작했고,
최종 접근로에 진입했을 때 타워의 음성이 들려왔다.
“Wind 060/04kt, Cleared to land, Runway 06L.”
정풍에 가까운, 아주 안정적인 조건.
착륙하기 좋은 날씨였다.
“1,000.”
“Stabilized.”
라디오 알티미터의 자동 콜아웃.
기장님의 확인.
이어서 조용히 말했다.
“Auto pilot off, manual flight.”
오토파일럿을 끄고, 직접 조종간을 잡았다.
돌풍성 바람도 없어 조종간을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50, 40, 30, 20, 10…”
Touch down.
기장님이 박수를 쳐주셨다.
“잘 내렸어!”
평가관님은 짧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잘 봤습니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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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게이트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Parking checklist complete.”
“수고하셨습니다.”
끝난 걸까? 정말, 부기장이 된 걸까?
축하한다는 말이 나를 향한 것이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입사동기들의 메시지와,
가족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그제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아, 뭔가 되긴 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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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면 일반 기장과의 첫 비행이 시작된다.
더 이상 교육비행이 아니다.
스스로 출근하고, 브리핑하고, 책임지는 비행.
더 이상 나의 실수를 커버해 줄 교관님도, Safety pilot도 없다.
언젠가, 비행이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걸 ‘일’이라고 부를 테니까.
그래도 나는 안다.
8년의 과정과 그 절실함은 절대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