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락내리락, 오락가락

오르락내리락오락가락 하면서걸어가기

by flyingfish
drawing by flyingfishstudio


drawing by flyingfishstudio


drawing by flyingfish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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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살 것 같았던 날들이 오고..

혼자 조용히 내 하루 일상과 루틴을 정리하면서 밥도 먹을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어질러진 집이 아니고, 아늑한 집에 나를 누일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고,

매일 늦은 오후에 카페로 가서 하루를 정리하면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혼자서 MORE THAN CAFE의 테라스에서 그림을 다 그린 후, 바로 앞 공원을 바라봤을 때, 몇 달 만인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별 일 아닌, 그러나 나에게는 별 일이었던 이 우울증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반으로 접혀 있던 나를 생각하니, 이제 되었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런 좋은 마음들도 잠시.

일을 하려고 그 전의 회사에 들어가니, 숨이 딱 막히고 가슴이 두근대고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원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컬렉션을 기획하고, 다른 디자이너들과 상품들을 만드는 공장 사람들과 장인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때론 싸우면서 다 같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가는 것.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결과물들이 사람의 몸에서 출렁이며 걸어가는 쇼,

음악, 무대, 조명, 사람

나는 그 안의 일부를 만든 거뿐인데 그것이 다 합체가 되어 드디어 퍼즐이 맞춰지듯 하나의 그림으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그것들이 살아서 걸어가고 있는 반 시간도 안 되는 시간들에 내 반년도 영상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 찰나가 좋았다.


결과물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 일의 대단한 기쁨 중에 하나였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그 즐거운 일의 이면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많은 질척거림이 있었다.


생각 해보니 아직도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그곳(옛 직장)에 가면 또 고스란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영국에서 나와 함께 온 두 친구를 모두 다 잃었다.


그중에서 한 친구 A는 학교를 졸업 후 바로 나와 함께 이 나라로 왔다.

같은 아파트 아래 위층에 살았고, 같은 회사를 다녔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정말 오직 두 사람을 의지하며 지냈다.

그녀는 말이 많고, 즐겁게 유쾌한 친구였고 일에 대한 욕심도 열정도 많은 아이였다.


조금 늦게 합류한 B 또한 우리와는 또 다른 나라 사람이었고 그녀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성격의,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 국적도 성격도 다 다른 셋.


학교 생활하듯 회사 생활을 했다.

주중에는 밤늦게까지,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 야참을 함께 먹고,

주말에는 가끔 클럽도 함께 다니면서,

친구이며 동료, 가족 같았다.

그때엔


일과 내 사생활

일과 나 자신

회사와 나


이라는 이분법-

즉 그 두 카테고리의 구분법을 몰랐다.


꿈과 나


라고만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이상적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니 위험한 발상이었다.


학생도 예술가도 아닌 회사원이 일이 꿈이 되는 것은,,

그 안에 자신을 다 쏟아붓고,

일의 결과에 따라

내가 아주 싫어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는 그런 것이었다.

일이 곧 나,

내가 이 나라에 있는 이유는 일이 다라고 생각하니 일이 잘 되고 안 되고 가 우리 생활을 좌우했다.


그러면서 감정의 기복도 심해지고, 나 자신으로 자아를 채우기보다 거기엔 꿈이라는 이름의 일밖에 채워지지 않으니 위태위태했던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이방인 셋은, 묘하게 심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세 자매와 같기도 했다.

회사에서 느끼는 자매애,

그 안에는 묘한 질투와 질척한 우애 같은 것, 회사 일이라기보다는 꿈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충만함과 불안/자신에 대한 불신을 한꺼번에 주기도 했다.


처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니까 마음이 터질 것 같아서 빨리 글을 마무리해야 하겠다.


아무래도 어떤 감정들을 문자 화하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림이라는 것은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 그때의 상황을 정확히 쳐다보지 않고 그 애매함 속으로 두리뭉실 숨을 수 있는 이점,

늘 그렇듯이 모든 감정들은 정확한 문자로 구성되어있지 않기에

감정의 모호함이 그림의 더 모호한 구석으로 , 감정의 아주 깊은 곳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또 다른 이점이 있다.


그래서 단순하고 모호한 그림이 나에게는 더 편한 매체였나 보다.


그러나 어느 날에는 내가 어떤 시점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오늘처럼 조금은 구체적으로 쓰다 보니, 한없이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내가 아직도 이 그림자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AW COLLECTION을 마친 3월의 어느 날, 회사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곧 있을 프레젠테이션 이야기를 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내 친구 B

말 수가 적던 친구였지만, 그날은 유난히 들뜬 목소리로 친척분이 물려주신 조금의 유산과 자기 돈을 합쳐서 드디어 학자금을 다 갚았다고 했다.

그리고 늘 아파트 셰어를 하다가 처음으로 혼자 살 아파트도 마련했고, 그 주변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보이니 이제는 좀 즐기며 살고 싶다 했다.

우리가 다 타국에서 사는 것이니,

언제 또 헤어질지도 모를 일이니, 이제는 일 끝나고 나면 맥주 한잔 하는 삶도 살아 보자 했다.


그리고

"flyingfish야, 나는 네가 꼭 독립해서 하고 싶은 것, 특히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


라고 내가 제일 존경하는 재능 있는 친구가 해준 말에 나도 무척 들뜨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이 말이 잊히지 않는다.

'오늘 점심은 내가 계산할게. 세상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너에게 밥을 사줄 수 있는 오늘-밥 한 번 꼭 사주고 싶어'

늘 돈에 쪼들렸던 그녀에게 학자금을 다 갚은 날 점심을 대접받았다.


그렇게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식사였다.



며칠 후 사월, 프레젠테이션 날-

익숙지 않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늘 긴장하던 그녀의 굳은 얼굴이, 유난히 더 굳어보이기 시작하더니,

친구가 쓰러졌다.

내가 구급차를 불러달라 했다.

움직임을 잃고,

언어를 잃고

그리고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친구는 북유럽-그녀의 고향에 작은 십자가 속으로 들어갔다.


한 명은 죽음으로

또 하나는 내가 더 이상 그 아이의 심각한 질투와 누구보다 따스한 자매애의 이상한 서클 안에서 내가 스스로 나왔다.


화냄-사과-화해-화냄-사과-화해


흔히 말하는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던 내가 쓰레기통을 두고 내 마음만 가지고 그곳을 나오면서

그렇게 끝이 났다.


상처와 아픔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 일에서 와서 그렇게나 힘이 드는가 보다.


다 잊히지 않는

그러나 지나간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 이후로 더더욱 나를 일에 묻고 살았고, 이 일련의일들은 그대로 묻혔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때의 마음들이 얼룩이 되어 나를 덮쳤다.


이제는 그만 이 이야기도 보내야 하겠다.

나는 아직도 그 '애도'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며칠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는 것, 쓰면서도 계속 가슴이 지릿하게 아픈 거, 이 글의 뚜껑을 닫아버리고 싶고 피하고 싶은 마음, 이런 것을 온전히 다 느끼는 것이 애도일까?


상담을 받아도 책을 읽어도 '안다'는 것과 그것을 소화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다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자신을 받아들임''애도의 과정' 등을 알고는 있지만 마음으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내 마음속에 마주하고 싶지 않고 열고 싶지 않은 서랍을 열어서 보는 것으로 내 나름의 한 발자국을 나아가 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별 일이 아니야

별 일이 아니야

이런 일로 호들갑떨지마.

해야할 것이 산더미야.' 라고 말했다.


타국에서 내가 흔들리면 내 삶 전체가 흔들릴까봐.


내가 내 아픔을 아는체 하면,

내가 아가야가 되어

입을 씰룩 씰룩하며 '아앙아앙'하고 서러움 폭발하듯 울까봐

친구의 부재에도

오랜 사랑이 갔을때도 쉽게 아는 체를 못했다.


내가 감정의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감정은 흘러가지 못하고 어딘가에 고인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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