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장과 속장이 다른 나

내가 점점 알아지기 시작했다-카오스의 시작

by flying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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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오빠와 친하다. 많이

오빠는 나에게 내성적이고 낯가리는 사람이라 했다.

그럴 때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고향이나 가족들로부터, 어른이 되고서는 고국으로부터 떨어져 생활을 하였다.

소위 친한 부류가 없이, 혼자서 낯선 곳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란,

나에게 또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 같은 것이었나 보다.


이 우울이 나를 덮치기 전까지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아니 시간, 아니면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넘어지고 보니, 양파껍질 까지듯 심연에 묻혀 있던 내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고름 터지듯 내 안에서 여러 가지 감정들, 성격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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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즈음부터는 나는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바나나를 끊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심각한 두통이나 흉통 없이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부정적 감정이나 불안은 여전하였고 거기다 더해진 내면의 터짐이 시작되었다.

그래, 나였겠지.

나이겠지.

그러나 이제껏 잘 보지 못했던 내 모습들이 지뢰밭 폭탄 터지듯

펑! 펑!

터졌다.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없겠더라...


이때 즈음에 나는 드디어 밖에 나갈 조그만 힘도 생겨서, 코로나로 사람이 사라진 도시를 걷고 또 걸었다.


그 당시의 나는 급성 우울증처럼 어느 날 몸과 마음이 다 함락되었지만

잠자고 밥 먹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우울을 넘어 존재에 대한 고민과 내 그림자와 대면했던 것 같다.


이제 나의 응급처치(우울증 약 복용)는 끝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에서 내 삶의, 존재의 문제로 넘어간 것이었다.

이 시기가 길어지겠구나
...


꾹꾹 담아왔던 수만 가지의 일들이, 그 기억들이, 그 느낌들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부딪혀할 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약도 아니고, 오직 나만이 내 내면을 달래고 어떻게든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생각보다 이 시기가 길어지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불편함과 경제적인 불편함은 있었다만,


그거 아셔요?


인생이 생각보다 공평하다는 거...


꿈이 무엇인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한 번도 곁눈질하지 않고 전공도,

학교도, 직장도 쭉 장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계속 뛰어 왔다는 거.


학창 시절에도, 사회 초년병 시절에도 주위에 수없이 방황하고 쉬어가는 사람들을 보았었다.

나는 이해를 잘하지 못했다.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에게도 말은 못 했지만

자기 인생인데 왜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지 한 번도 그들을 마음속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도 넘어지고, 이제까지의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안하고 무서워졌다.

나도 넘어졌다.

그래서 인생이 생각보다 공평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쭉쭉 달릴 줄 알았는데..


모두에게 방황의 시기, 넘어짐의 시기가 있구나.

그렇다면 조금 더 빨리 넘어져도 좋았겠지만, 더 늦은 나이에 넘어지는 것보다 지금이 낫겠지...

아님 이런 것들도 다 정해진 인생의 시기가 있나?


하 하 하


일단 한번 웃어본다.

농담을 좋아하는 내가 우울에 빠져 농담을 못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이때부터는 나에게 조롱 섞인 농담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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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해도, 심리학/철학 책을 읽어도 나는 여전히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힘들었다.


중학교 때 자꾸 내 방문을 힐끔 열며 자주자주 "뭐해?"라고 묻던 엄마의 모습,

내가 나 자신에게 그러고 있었다.


단 한순간도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자꾸만 나라는 아이에게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상담도 시키고, 책도 읽히고, 운동도 시키고, 무언가를 자꾸자꾸 시키고 있었다.


이때 즈음 나는 어렴풋이 내 안에는 적어도 두 명의 나는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제껏 살아왔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듯 효율적으로 내 이 마음을 처리하려는 나와 내 본연의 자아-작지만 강한 존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글을 쓸 때보다 그림을 그릴 때 내 이 본래의(?) 자아가 자주 등장했다.

그림이라는 것은 원래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것인데,


자아 1은 내 두뇌에 살고

자아 2는 내 손에 사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를 배우고,

사회생활을 하며 친구를 사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고 떠나보내고,

별로 힘들지 않게 살았다 생각했는데...

삶의 어느 모퉁이 모퉁이 힘들었던 때가 많았나 보다.


내 지나간 삶들의 모든 것이 나를 만들었고

그것을 지금 내가 어찌해볼 수도 없다.


상담을 하면서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조력자가 생김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와의 거리를 넓혀줌으로써, 조금 더 편안해지기도 하고

또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한 시기의

내 마음의 불을 함께 꺼주었기에 좋았던 부분도 많다.


그러나 결국 또다시,

그 큰 불을 끄고 나면 화재 복구는 나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그림이라는 것이 도구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보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 오늘도

사실 애쓰는 중이다.


자아 2야!

미안하다.

너를 계속 내버려 두기에는 나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니?


아직 또 하나의 나를 이해하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세상에 태어나 나 한 사람만 이해하고 가도 아주 큰 일을 한 것 같을 것같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면 할 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도 점점 커지는 것 같고,원망도 사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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