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a Oct 18. 2020

승무원은 원래 이렇게 외로운 직업입니까?

  'Tim Hortons'
  공항에 도착해서 이 빨간 간판만 봐도 "캐나다에 왔구나!" 하는 마음에 신이 난다. 캐나다뿐만 아니다. 나는 각 나라, 각 도시에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는 편이다. 어딜 가든 그곳 만의 좋음이 있고, 그 좋음을 찾아내려고, 충분히 느끼려고 온 몸을 내던지는 편이다. 게다가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행 생활을 하면서 해외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최고로 사랑한다. '낯선 도시'와 '나 혼자'라는 조합은 정말 기가 막히다. 혼자 발 가는 대로 걷고, 밥을 먹고 (음식을 여러 개 시킬 수 없는 것 하나는 아쉽지만), 커피를 마시고, 그림을 본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맞출 필요도 없다. 이 자유는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날도 11시간 비행을 마치고 호텔에서 기절한 듯이 자다가 초저녁쯤 일어났다. 호텔방에서 밤을 보낼 때 새벽에 배고플 경우를 대비해 미리 저녁을 챙겨 먹거나 식량을 구비해둬야 한다.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알람을 맞춰두고 좀비처럼 일어나서 끼니를 꼭 챙겨 먹는 편이다. 물론 들어오는 길에 비상식량도 사 온다. 시차로 인해 밤 새 넷플릭스나 볼게 뻔하기 때문에 주전부리가 없는 밤은 너무 길고 괴롭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왠지 밥은 먹기 싫어서 '팀 홀튼'에 가기로 했다. '팀 홀튼'은 캐나다의 '던킨 도너츠'같은 곳인데, 주로 도넛과 커피를 판다. 가격이 저렴하고 당 충전에 제격이라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스테이크&치즈파니니 너무 맛있었는데 그 후론 매장에서 보지 못했다. 그리고 프렌치바닐라와 함께 가장 인기많은 아이스드캡(Iced Cap)


  화장기 없는 얼굴로 원피스만 겨우겨우 뒤집어쓰고 호텔 앞의 '팀 홀튼'으로 향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에 같이 온 승무원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후다닥 들어갔다. 일단 끼니를 때울 생각이니 도넛 보다도 '스테이크 앤 치즈 파니니'와 '아이스드 캡'을 주문하고, 만족스럽게 한입 와앙 베어 문 순간
 
"어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아 나는 속으로 '망했다'를 두 번 외치고 활짝 웃으며 돌아봤다. 이번 비행에 동행 한 두 명의 교육생이었다. 교육이 끝나갈 무렵 교육생들은 '실습비행'으로 실제 단거리, 장거리 비행에 투입되어 실제 비행 현장을 몸소 익히고 간단한 업무를 거들며 평가를 받는다. 그 작고 소중하고 희망에 가득 찬 교육생들이 피곤에 절어서 눈도 못 뜨고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먹고 있는 나의 뒤통수를 발견한 것이다.

"여기 앉아도 됩니까?"
군기가 바짝 든 예의바른 교육생들은 비행기 안에서나 밖에서나 '-다,-까'체를 잊지 않았다.

"응 앉아요. 뭐 먹을래요? 내가 살게요."
  작고 소중한 병아리 둘이 손사래를 쳤지만 교육생 월급 뻔한데, 체류비도 안 나오는 아이들에게 커피라도 사주고 싶었다. 그렇게 교육생들의 커피가 나오고, 나는 여전히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 네 개가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게 부담스러워서 체할 것 같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교육생 한 명이 입을 뗀다.


승무원은 원래 이렇게 외로운 직업입니까?



  순간 머리가 띵 했다. 그러니까 승무원 생활의 환상만 가지고 첫 장거리를 온 아이들에겐 혼자서 기계처럼 샌드위치만 씹고 있는 내가 너무나도 외롭고 처량해 보였던 것이다. 이게 분명 그들이 상상한 승무원의 레이오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야 얘들아 나 지금 무지 행복해. 팀으로 온 게 아니라서 다 같이 밥 먹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나 지금 최고야 너무 행복해! 짱이야! 너희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지금 이 순간이 최고라는 걸 너희도 곧 알게 될 거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모든 승무원의 마음을 대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생활을 외로워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가끔 외롭기 때문에.



  뭐 어쨌든 그 날 나는 교육생들의 동심을 파괴한 죄로 한참 동안이나 팀 홀튼에 붙잡혀서 이 직업의 좋은 점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여기는 이렇고 저기는 저래. 이 일은 생각보다 괜찮은 직업이고 세상에 좋은 곳은 엄청나게 많아. 그대들은 이 직업 덕분에 이 넓은 세상을 다 보게 될 거야." 정도로. 꿈과 희망을 안고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나의 몰골 자체가 비극이었다. 그때의 내 모습을 보고도 비행기에서 11시간 동안 봤던 그 언니와 동일인물이라고 확신했던 그 후배들에게 참 서운하다.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지금도 '팀 홀튼' 앞을 지날 때면 그때 그 친구의 한마디가 귀에 맴돈다. 살짝 허스키하면서 군기가 바짝 들어있던 그 목소리. 그리고 나도 한번 생각해 본다. 혹시 나도 지금 외로운지, 그때 내가 괜찮은 척했던 건 아닌지. 5년이 지난 지금 그 후배는 이 일을 잘하고 있을까, 혹시 외로워서 그만두지는 않았으려나. 정말 승무원으로 살아본 소감은 어떨까. 내 말대로 꽤 괜찮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걱정했던 대로 외로웠을까. 지금도 비행을 하고 있다면 언젠가 만나서 꼭 물어보고 싶다. 아 그런데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목소리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그러니까 오늘도 나에게 다정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