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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스 Jun 06. 2021

3개국에서 만난 인연

치과의사 그만두고 프리다이빙 강사 되기 3편

물 위에서 v 포즈를 취하는 병길 프리다이버



병길이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다. 나는 병길이를 3년 전 포르투갈의 포르투(Porto)에서 만났다. 우리는 같은 호스텔에 묶고 있었다. 그 호스텔 안에는 한국 여행객이 우리 둘 뿐이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우리는 하루 동안 포르투 시내투어를 같이 했다. 병길이는 나 보다 3살 동생이었다. 병길이는 명문대를 졸업한 회계사였다. 취직한 지 1년이 조금 안 되었고 휴가를 길게 내고 포르투갈을 여행하고 있었다. 병길이는 피부도 하얗고 옷 차림새도 깔끔했다. 전형적인 엘리트 화이트칼라처럼 보였다. 병길이는 회계사답게 여행경비 지출 내역을 날짜 별로 세세하게 엑셀에 정리했다. 이렇게 정리해 두면 그날에 뭐 했는지 나중에 기억하기 쉽다고 했다. 꼼꼼한 성격 그리고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병길이도 나 못지않게 배낭여행을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병길이는 회사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단기 여행만 할 수 있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는 청년이었다. 이 정도가 병길이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였다.



요즘 나는 일 가든(eel garden)에 있는 해변 카페에 자주 들른다. 일 가든은 다합의 중심상권 라이트 하우스(Light house)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곳은 정원 장어(Garden Eel)로 유명하다. 잠수를 해서 일 가든의 바닷속에 들어가면 수십 마리의 정원 장어들이 고운 모래바닥에서 하늘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몸통은 모래 속에 숨기고 나머지 몸의 일부와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물살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정원 장어들은 주변의 위험을 느끼면 언제라도 모래 속으로 완전히 숨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원 장어를 가까이서 보려면 숨죽여 접근해야 한다. 정원 장어를 잘 관찰하려면 다이빙 내공이 필요하다. 초보 다이버는 행동이 부산스럽기 때문에 초보 다이버가 정원 장어에게 접근하면 정원 장어는 미리 낌새를 채서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일 가든( eel garden)의 정원 장어( Garden eel)들- 모래에서 숨어있다가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다.


다합 생활 초기에는 일 가든의 아름다운 바닷속을 보기 위해서 이곳에 종종 왔었다. 요즘에는 번잡함을 피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이곳 일 가든에 온다. 이 곳은 여행객들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는 다합에서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행자에서 거주자로 변모했다. 다합 생활 초창기의 나는 여행자로서 다양한 여행자들과 여행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대해서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다합에서 새로운 여행자를 만났을 때 대화의 시작은 이런 식이다.

“어디에서 넘어오셨어요?”  “다합에는 얼마나 있을 예정이에요?” “이제 다음 여행지는 어디예요?”

“한국 나온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모두 각자만의 여행루트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혼자서 여행을 하거나 부부끼리 또는 친구와 같이 여행을 한다. 유럽에서 넘어온 분들도 있고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끝나고 오는 여행자도 있다. 어느 정도 인사치레를 마치고 나면 나도 내 소개를 한다. 나는 프리다이빙 강사를 하고 있고 다합에 온 지는 10달 정도 되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더불어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치과의사를 했었다고 대답한다. 대화하는 상대방은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어떻게 이 곳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냐’

‘이렇게 아름다운 다합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는 생활이 부럽다’

‘전직 치과의사 현직 프리다이빙 강사라는 것이 신기하다’

‘프리다이빙의 매력이 무엇이냐’



여행자들은 프리다이빙에 대해서 호기심을 보이기 일쑤였다. 또 왜인지 처음 본 여행자 분들은 나를 ‘동건 씨’라고 부르기보다는 ‘강사님’이라고 호칭했다. 몇 번 ‘강사님’ 소리를 들을 때는 뿌듯했다. 강사가 되기까지 힘든 여정을 이겨내고 지금 이런 위치에 올라온 느낌이었다. 초보 강사답게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강사님’ 호칭에 걸맞은 행동과 언행을 하려고 애썼다. 여행자들에게 프리다이빙이 무엇인지 친절한 미소를 곁들여 설명해준다. 나는 그들에게 생애 첫 번째 프리다이빙 강사였다. 그래서 더 직업적 책임감을 느끼며 여행자들을 대했다. 내가 사랑하는 프리다이빙을 홍보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사님’이라는 호칭에 내가 갇히는 느낌이었다. 더 예의 있어 보여야 될 것 같고 친절해 보여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만든 ‘강사님’의 이미지에 부담감을 느꼈다. 새로운 여행자들과 반복되는 만남에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대화에도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닌 다합에 사는 거주자임을 깨달았다. 다합에 새로운 여행자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질 풍경과 대화들도 나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었다.  



다이빙 연습이나 강습을 하지 않는 날이면 나는 여행자들을 피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다합에 왔다. 그리고 다합에서의 도피처는 일가든 이었다. 일 가든에서는 새로운 사람에게 친절한 인사를 건넬 필요가 없었다. 수십 번은 되풀이했을 내 소개를 다시 할 필요도 없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발전되고 깊어지는 데에는 서로의 관심사뿐만 아니라 시간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구나’ 다합에서 많은 여행자들을 만났지만 대부분은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었다. 그런 피상적인 인간관계에 지칠 때면 한국으로 돌아간 현균이와 준영이가 더 그리워졌다. 프리다이빙의 처음과 끝을 같이 했던 경험을 공유한 나의 버디들이 보고 싶었다.

오늘은 일 가든에 한국인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나는 그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 청년이 나에게 쭈뼛거리며 인사를 건네 온다.


“혹시 프리다이빙 강사님 아니세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다합에 한국인 강사님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분 맞으시군요”

나는 내심 으쓱했다. 나는 다합에서 유일한 한국인 프리다이빙 강사였다.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내가 입소문으로 회자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 분도 프리다이빙에 관심 있는 사람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우리 포르투갈에서 전에 만났었는데… 기억나세요?”그 청년이 말했다.

“네? 포르투갈에서요?” 나는 그 청년을 한참을 응시했다.

그 청년은 다합에 오는 여행자 답지 않게 단정한 용모에 피부도 하얀 편이었다. 포르투갈을 여행 갔던 게 3년 전 일이다. 기억이 날 터가 없었다.

“우리 그때 포르투에서 같이 워킹투어 했었는데..”

“아! 맞아요. 이제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3년 전 포르투에서 같이 동행했던 청년이 있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와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아 근데 이름이 뭐였죠? 오래전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워낙 오래전 일이죠. 저 최병길이에요”

그래 그러고 보니 익숙한 이름이었다. 병길이는 예전에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을 찾아내서 보여주었다. 우리는 사진 속에서 꽤 친해 보였다. 옛 사진을 보고 병길이 목소리에 익숙해지자 그제야 내 뉴런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데이터들이 하나씩 의식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행경비를 엑셀에 기록하는 꼼꼼한 회계사 청년이 바로 최병길 그였다.

포르투갈에서 포르토에서 병길이와 함께



병길이는 세계 여행자처럼 보이는 차림새는 아니었다. 머리가 지저분하게 길지 않고 정돈되어 있었다. 편한 옷 차림새였지만 너저분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말투도 차분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자유로움이 배어 있었지만 행동과 말투는 절제되고 정제된 느낌이었다. 그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세계 여행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여행지에서는 여행 경험에 따라 여행자의 레벨이 있다. 여행일 수가 길수록 그리고 거쳐온 여행지가 많을수록 더 여행 레벨이 높은 이치이다. 병길이 또한 산전수전 다 겪은 여행 고수였지만 그는 거들먹거리지 않고 겸손했다. 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아프리카 최남단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아프리카의 최북단 이집트까지 왔다고 한다. 병길이는 내가 다합에 있는 걸 알았다고 한다. 내 SNS에 ‘Dahab’이라고 쓰여 있는 걸 봤다고 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여행자들 모두 우리의 재회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루트가 비슷한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같은 사람을 여러 도시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3년 간격을 두고 포르투갈과 이집트에서 만난 이야기는 그 자리에 있던 여행 고수들 모두에게도 전대미문의 특별한 일이었다. 이곳에서 피상적인 인관관계에 지쳐 있던 나는 특별한 인연의 병길이에게 곧 마음이 갔다.



이론 교육 시간
수영장 세션( pool session)


병길이는 나에게 프리다이빙 코스를 수강했다. 그는 수영실력도 뛰어났고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거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나는 그 덕분에 크게 어려움 없이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코스를 진행할수록 병길이의 프리다이빙 재능이 드러났다. 병길이는 특히 스테틱(Static)이란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AIDA 2 star를 무사히 끝내고 AIDA 3 star를 시작한 날이었다. AIDA 3 star의 이론 교육을 끝내고 우리는 스테틱(Static)을 하기 위해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3 star의 스테틱 통과를 위한 자격요건은 2분 45초다. 병길이는 타고나길 숨이 긴 편이어서 첫 번째 시도에서 이미 자격요건을 충족했다. 나는 병길이의 능력을 더 이끌어내고 싶어 졌다. 두 번의 스테틱을 더 하기로 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3분 초반대 까지만 하고 스테틱을 끝냈다. 마지막 시도에서 힘을 다 하기 위해서 두 번째에서는 무리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스테틱이다.


“병길아 조금 더 쉬었다가 한 번 더 스테틱을 할 거야. 요령은 지금 하고 똑같아. 컨트렉션이 오면 왼 손가락을 펴서 나에게 보여줘. 그리고 내가 코칭해주는 데로 잘 따라오면 돼.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가볼 거야”

“알겠어요 형.”

병길이는 준비 호흡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2분 카운팅을 시작했다.

“2 minute, 1 minute 30, 1 minute, 30 secounds, 20 seconds, 10 seconds, 5,4,3,2,1 Whenever you ready you can start”


병길이는 스테틱을 시작했다. 그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 병길이는 내면에 집중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몸과 마음은 점점 차분해져 갔다. 시간이 어느덧 2분에 가까워졌다. 첫 번째 스테틱에서는 1분 후반대에 그리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2분 초반대에 컨트렉션이 왔다. 이번에도 2분 초반대에 컨트렉션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나는 그의 왼 손가락이 올라오는 오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물 안의 그의 왼손에 더 집중했다. 그리고 오른손을 그의 등에 가벼이 얹어서 컨트렉션이 오는지 체크하기 시작했다. 컨트렉션이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의 몸은 반응이 없었고 여전히 고요해 보였다. 2분 30초가 거의 다 되었을 때도 그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약하지만 컨스렉션을 시작했다. 나는 병길이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컨트렉션이 느껴지면 왼손가락을 펴서 사인을 주세요” 나는 조용히 차분하게 말했다. 스테틱 하는 사람의 집중을 흐트러트리지 않게 위해서다. 내 코칭을 듣고서야 그의 왼 손가락이 올라왔다. 컨트렉션의 빈도와 강도로 보았을 때 그는 아직 숨이 충분했다. 나는 병길이의 세 번째 스테틱 기록을 3분 40초 정도로 목표하고 있었다. 숨이 긴 병길이였지만 아직 초보였기에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보수적으로 목표를 잡았다. 목표했던 시간이 다가와도 병길이는 여전히 차분해 보였다.


“괜찮으면 왼손 올려서 오케이 사인 주세요” 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병길이에게 말했다. 병길이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는 여전히 여유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초보자일 뿐이다. 초보자 때는 기록을 향해서 욕심을 내기 쉽다. 다이빙 강사는 그것을 잘 판단하고 적당히 끊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보자 때도 스테틱을 하다가 LMC(Loss of motor control, 운동 제어능력 상실)이 발생할 수 있다. 4분이 가까워질수록 내 신경도 곤두서기 시작했다. 언제 끊어야 할지 타이밍을 계속 보고 있었다. 병길이 정도 경력에서 스테틱 4분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정도 시간대에 오면 컨트렉션이 심하게 오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병길이의 몸은 여전히 평화롭다. 병길이는 내 코칭에 잘 반응하고 있었고 오케이 사인도 잘 주었다. 시간은 어느덧 4분 10초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하는 건 무리다 싶어서 병길이의 스테틱을 끝낼 코칭을 시작했다.


“이제 왼손을 벽 위에 올릴게요. 그리고 오른손도 벽 위에 올리세요.  이제 천천히 다리를 내리겠습니다. 이 상태에서 고개만 들게요 이제”

병길이는 내 코칭을 잘 따라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다.

“자 회복 호흡! 크게 들이쉬고 Holding. 그리고 내쉬고  바로 또 크게 들 이마 쉬고”

나는 병길이의 눈을 유심히 관찰하며 회홉호흡을 상기시켰다. 물밖로 나온 이 순간이 위험한 순간이다. 물에 떠 있던 때와 달리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갑자기 에너지들이 소진되면서 의식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에서 나오자마자 회홉호흡으로 빠르게 다시 산소를 섭취해주어야 한다. 이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깐 멈춰주어 산소가 폐포로 기체 교환이 일어날 시간을 주어야 한다.

“I am Okay” 병길이는 회복 호흡을 무사히 마스크를 벗고 나서 나를 보며 수면 프로토콜 또한 마쳤다. 병길이의 스테틱 기록은 4분 20초였다. 병길이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른 줄 몰랐다고 했다.

“병길아 너 왜 처음에 컨트렉션 왔을 때 나한테 사인 안 줬어?”

“아 형 죄송해요. 그때 깜박 졸았어요”

‘스테틱을 하다가 물에서 졸았다니. 이 친구 뭐지?’ 나는 병길이의 스테틱 잠재력에 놀랐다. 병길이는 범상치 않은 집중력과 자기 암시를 갖고 있어 보였다. 스테틱 세계 기록이 11분 35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스테틱을 할 때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 심박수를 낮추고 에너지 소모를 줄인다. 병길이는 경력은 짧지만 이미 그런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병길아 너 대박이다. 재능 있어. 여행가지 말고 여기서 프리다이빙 더 하자”

“그래요 형? 저도 프리다이빙 너무 좋아요. 요즘 직장문제 머리 아팠는데, 물안에 들어가면 그런 게 생각 안 나고 좋아요.”

“와 벌써 그런 걸 느꼈구나. 그런 게 프리다이빙 매력이야. 내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거든”


바다 세션( Open water session)

병길이와 함께한 AIDA 2 star, 3 star 과정은 나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해변 카페에서 주로 이론 수업을 했다. 수업 중간중간에 종종 수다도 떨며 사제지간과 친구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병길이는 AIDA 3 Star의 자격요건(Requirements)들도 무사히 이수했다. 나는 그가 코스를 끝낸 이후에도 다합에 더 남아 있기 바랐다. 그의 다이빙 재능을 더 살려주고 싶었고 그와 이별하는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병길이는 다합 이후에 요르단을 거쳐 네팔 트레킹을 가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네팔은 6월에 우기라서 트레킹 하기에 힘들다. 그래서 6월이 되기 전에 네팔로 가야 하기에 일정에 여유가 없었다. 병길이도 다합에서 프리다이빙을 더 하고 싶었지만 다음 여행 일정에 쫓겨서 다합을 떠났다.  병길이는 한국에서 다시 보자고 아쉬움을 달래며 떠났다.

“형 우리 한국에서도 만나면, 포르투갈 이집트 그리고 한국 이렇게 3개국에서 만난 거네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아쉬움 담긴 미소를 지었다.

약속대로 우린 한국에서도 재회했다. 병길이는 단정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3개국에서 만난 병길이 그리고 그 인연 둘 다 모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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