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떠지지도 않는 눈을 찡그려가며 들여다본 휴대폰 화면에는 ‘7,0,5’라는 숫자가 나열돼 있다. 말도 안 된다. 7시 5분이라니. 남들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에겐 아직 한창 새벽인 시간이다. 대체 이 시간에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저자는 누구란 말인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이불을 뒤집어쓰는데, 다시 소리가 들린다. ‘쾅쾅!! 쾅쾅쾅쾅쾅쾅!!’ 하. 짜증나. 다시는 이 집 문을 두드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서도 들리도록 최대한 쿵쾅거리며 걸어가 문을 열었다. “아이고! 있었네~”
거기엔 나를 너무나 반가워하는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반가움이 지나쳐서 순간 아는 분인가도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나오지 않았다면 문을 더 두드리려 했는지 할머니는 여전히 주먹을 쥐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땀을 닦을 손수건이 들려 있고, 머리는 반쯤 희끗하게 세었는데 따로 염색을 하시는 것 같진 않았다. 딱히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손녀 보듯 너무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공손히 미간의 주름을 풀었다. 할머니도 방금 막 이불에서 기어 나온내 몰골을 눈치채고는 자고 있었나 보다고 미안해하며 빠르게 용건을 꺼냈다. “아니, 이 집 마당에 며칠째 서랍이 있길래. 저거 버리는 거면 좀 가져가도 되나 해서요.” 그래. 엊그제인가 그 전날인가부터 마당에 작은 서랍 같은 게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저런 건 버리려면 폐기물 신고를 해야 할 테니 잠깐 놔둔 거겠거니 생각했었다. 다만 뭘 저렇게 마당 한가운데 뒀는지는 좀 불만이었지. 이 집 마당을 공유하는 가구 수는 모두 5개. 우리 집은 아니었으므로, 나머지 넷 중 하나가 내놓았을 것이다. 문을 더 열고 밖으로 나와 마당을 내다봤다. 서랍은 계속 있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옆엔 폐지 같은 게 켜켜이 눕혀진 리어카가 보였다. 할머니는 폐지와 고물을 주워다가 파는 일을 하시는 것 같았다.
어차피 버리는 거면 할머니가 가져가는 게 여러모로 좋겠으나, 어쨌든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버리는 건지 (그럴 리는 없어 보였지만) 쓰는 건데 잠시 내놓은 건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우리 집 것이 아니라고 하자 할머니는 무거운 한숨을 푹 쉬셨다.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집 말고 다른 집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아무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한다는 거였다. 그럴 리가? 그럼 저걸 누가 저기다 가져다 놓은 걸까. “이거 팔면 얼마나 하려나? 폐지보다는 더 주지 않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거든. 이런 물건은 처음이라 가늠이 안 되네... 아유, 근데 주인을 알 수가 없으니 어째.” 서랍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빛이 빈 섬에서 보물을 발견한 해적처럼 빛났다.나를 세워두고 잠시 동안 하소연을 하던 할머니는, 그녀의 보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걸어 나갔다. 걸어가면서도 집집이 담 앞에 내놓은 다른 보물은 없는지 매의 눈으로 살폈다.
주인에게 허락받지 못해 보물을 가져가지 못하는 해적이라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가 싶더니, 내눈에도 서서히저기 서있는 서랍이 보물처럼 보이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서랍은 여전히 마당에 놓여있었다. 그동안 비도 맞았으니 버릴 생각이 아니었다 해도 이제 만들어졌을 때의 목적대로는 못 쓰는 물건이다. 그런데도 아주 탐스러운 자태였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