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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탄 Sep 12. 2019

온통 다 설렘

일곱 번째 얼굴 : 1호선에서 만난 할머니



“이거 타면 영등포 가는 거 맞지?”
 
1호선 전철. 의미 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내 앞에, 옆자리의 할머니가 불쑥 얼굴을 내민다. 어딜 가시는지 곱게도 차려입으셨다.
맞다고, 짧은 대답을 하고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옆자리의 실루엣이 가만 앉아질 못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게 껴졌지만 딱히 신경 쓰진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다시 내 앞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조금 상기된 볼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허허. 글쎄 12년 만에 전화가 와서 보자고 그래서 내 알겠다고, 간다고 했지.

... 12년 만이야. 근데 이거 영등포 가는 거 맞지요?

... 아, 그래요. 친절하기도 하지. 아침에 일찍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고. 가서 다시 전화해봐야지. 근데 영등포까진 얼마나 걸리나? 아직도 한 시간은 남았지?

... 그래요, 그래요.”
 
12년 만의 만남이 감격스러운 듯 할머니의 말들은 연신 떨리고 있었다. 가쁜 숨이 묻어나는 목소리, 자꾸만 들썩이는 입가의 주름, 하얗게 깜빡이는 속눈썹까지. 온통 다 설렘이었다.


나는 20분 정도를 더 가서 내렸고 할머니는 내리는 나에게 잘 가요, 하고 인사를 건네셨다. 요란기계 소리와 함께 플랫폼이 비어진 후에도, 한동안 할머니가 남기고 간 설렘의 여음에 쉽게 발을 떼어내지 못했다. 친구일까 아니면 사랑일까.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반대편의 또 다른 떨림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며칠을 더 함께 설레었다.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 있습니다.

낯선 얼굴이 건네는 이야기, 라는 소재로 글쓰기를 결심하고 가 좀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브런치에 발을 들였어요. 역시 누군가 내 생각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건 정말 큰 기쁨이네요.

좋아요 눌러주시는 분, 댓글로 표현해주시는 분, 구독까지 주시는 분, 그냥 읽어만 주시는 분도 모두 감사합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 덕분인지 정말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앗싸 소리가 절로 나요.


추석입니다.

육체 노동, 감정 노동으로 지쳐 죽겠는 연휴 말고,

모두가 빠짐없이 온통 다 설렘인 연휴 되시면 좋겠습니다.






<101개의 얼굴에 대한 보고서>

매일 옷깃 스쳐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기록입니다.

낯선 얼굴들이 건네는 안 낯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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