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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탄 Oct 07. 2019

'야' 말고, 예쁜 이름으로

오늘의 행인1 : '야'라고 불리던 아이



다정하게 ‘야~’가 아니었다. 느낌표 붙인, 그것도 거친 느낌표를 팍팍 붙인 ‘야!!!'였다. 거리에서 본 할아버지 손자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아이는 노오란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손에는 바람개비 하나를 들고, 벤치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와는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서서 람들이 지나가는 걸음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가끔은 그 걸음을 아장아장 뒤좇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저지하는 표현으로 '야'라고 고함을 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들 앞을 지나는 순간, 아이가 이번엔 내 걸음을 좇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글방글 웃으며, 바람개비 하나는 계속해서 손에 들고 내 뒤를 따다.


고함이 날아올 것 같아서 할아버지를 돌아봤다. 옆에 앉은 다른 할아버지랑 얘기를 하고 있어 아직 아이를 못 본 듯했다. 

내가 가는 데로 아이가 서툰 발걸음을 종종대며 따라오는 바람에 길을 갈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 섰더니 아이도 섰다. 방긋 웃길래 나도 방긋 웃다. 그러니까 이번엔 손에 든 바람개비를 좀 보라는 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 바람개비를 돌렸다. 

같이 도는 대신 더 방긋 웃어주었다. 등에 멘 가방 이름표가 보였다. 예쁜 이름이었다.

“야!!!”

번쩍, 하고 악 쓰는 소리로 할아버지가 다시 아이를 불렀다. 나는 놀라서 어깨까지 들썩였는데,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할아버지 쪽으로 몸을 돌다. 곁으로 가까이 가진 않았으나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는 것 정도에 만족하는지, 할아버지는 다시 아이에게 시선을 거뒀다.
나도 갈 길이 바빠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멈추었던 걸음을 걸 나갔다.


가는 나를 잠시 돌아보던 아이는, 저쪽에서 오는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려 아장아장 다가갔다. 때마다 할아버지의 거친 ‘야’가 다시 들렸다. 그 외마디 말고는 할 말 없는지 뒤따라오는 다른 말은 다.


늦지 않게 지하철을 타고서 괜히 귀가 따가워 손으로 귓바퀴를 한번 훑었다. 아이의 노오란 가방에 쓰여있던 이름은 ‘야'가 아니었는데. 


이름으로 불리길. 알록달록한 바람개비처럼, 노오란 가방처럼 생생한 이름으로 불리길. 가장 다정한 소리로 불리길.

그날 몇 번이고 아이의 이름 되뇌어 보았다. 






<101개의 얼굴에 대한 보고서>

매일 옷깃 스쳐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기록입니다.

낯선 얼굴들이 건네는 안 낯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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