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첫인상, 단단한 끝 인상

시작이 반 이상이다.

by 플라잉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더니…”

흔히들 시작이 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은 반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서비스의 최전방에서 일하며 마주했던 수많은 고객 불만 편지는 대개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더니…”

불만의 화살은 대개 첫인상, 탑승부터 시작한다. 승무원의 표정이 집에 우환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어두웠다거나, 인사가 형식적이었다는 지적에서 길을 못 찾는 어르신께 손가락으로 방향만 까딱거리는 태도를 보였다는 상관없는 사연, 결국 식사가 잘못 나오거나 응대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승객은 참았던 화를 터뜨리며 고객 불만 편지라는 마침표를 찍는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고. 각인 효과 사람들은 처음 받은 인상을 필터 삼아 그 이후의 모든 행동을 해석한다.


나는 대한항공에서 10년 동안 일하며 운 좋게도 고객 불만을 단 한 건도 받지 않았다. 비결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보딩 타임(Boarding Time)’을 꼽는다. 승객이 탑승해 문이 닫히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업무량이 폭발하는 이 짧은 찰나가 비행 전체의 공기를 결정한다. 나는 비행기 문이 닫힌 후 보딩 인사를 할 때 담당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췄다.


비즈니스와 퍼스트 클래스에서 근무할 때는 “안녕하세요 **님, 담당 승무원 김경민입니다. 목적지까지 편히 모시겠습니다.” 한분 한분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첫 단추를 잘 끼워놓으면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관대해진다. 나도 음료 주문을 깜빡 잊기도 하고, 입국 서류를 챙겨드리지 않은 채 비행기 문을 나서서 호텔 방에서 홀로 '이불킥'을 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에이, 바쁘면 그럴 수 있죠. 괜찮아요.”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미소를 만날 수 있었다. 보딩 타임에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이며 열어둔 마음에서 ‘시작은 반이 아니라, 반 이상이다.’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은 서비스 강사로 ‘이미지 메이킹’ 첫인상을 강의한다. 내 강의의 문을 여는 것은 언제나 ‘첫인상 게임’이다. “저를 보고 드는 느낌을 딱 다섯 글자로만 말해 주세요!” 아이스브레이킹이자 사심을 채우는 시간. ‘친절해 보임’, ‘미스코리아’ 같은 기분 좋은 오답이 쏟아지면 돌잔치 사회자처럼 유쾌하게 분위기를 띄운다.

열정적인 강의에 끝은 다시 묻는 ‘끝 인상 게임’이다.


처음이 좋아야 기회가 생기지만, 결국 끝이 좋아야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된다. 시작은 화려하게 포장할 수 있어도, 마지막까지 잃지 않는 일관된 진심이다. 다정한 첫인상, 단단한 끝 인상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다정함의 실체다. 다정함은 처음만 잘 보이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순간의 친절을 넘어,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일관성과 태도다.


공공기관의 출강 강사로 일하고 있다. 지사장님들을 대상으로 했던 리더십 강의에서 만난 분을 시간이 흘러, 퇴직을 앞둔 분들을 위한 교육 현장에서 다시 만났다. 한 조직의 정점에 계셨던 분의 마지막 뒷모습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강의가 끝나고 나의 끝 인상을 이렇게 적어주셨다. 경민므찌다.”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누군가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과 가장 쓸쓸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긴 시간의 끝에서 여전히 ‘멋진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다정한 태도로 사람의 마음을 얻고, 단단한 일관성으로 그 마음을 지켜내는 것. 누군가의 기억 속에 ‘다시 보고 싶은 마지막’으로 남기 위해, 기꺼이 먼저 미소 지어보자.


첫인상은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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