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이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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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놀란, 이라는 평을 먼저 들었다. 영화제도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 박수 소리를 들어본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일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다. 놀란이 아니었다면 이런 호평이 가능했을까.
덩케르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1940년 독일군의 수세에 몰린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덩케르크 해변에서 바다 건너 영국으로 탈출하기만을 기다린다. 영국에서는 윈스턴 처칠이 총리에 선출된 후 첫 과제였고, 성공 여부에 따라 그의 정치 생명은 물론, 유럽 전 대륙의 역사가 뒤바뀔 수 있었다. 독일 전차부대가 주춤한 틈새를 노려 해협을 건널 수 있는 모든 배를 동원한 결과, 9일간 민간 어선을 포함해 890여 척의 배가 약 33만명을 구했다.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 <덩케르크>는 실험적이다.수많은 얼굴이 등장하고 카메라의 시선이 좀더 머무는 인물이 있지만, 누구 하나 특정해 주인공이라 하기 어렵다.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덩케르크 해변까지 왔는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는 등장인물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영화의 서사는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의 영화의 시간에 오롯이 머문다.
영화 전후, 인물 각자의 사정을 철저히 배제한 덕에 영화의 모든 시선은 생존을 건 전쟁 그 자체의 드라마에 집중된다. 고국을 향한 배에 몸을 싣기 위해 군복을 바꿔 입고 잔교를 헤쳐 나가는 어린 병사들, 연료와 시간, 적기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상공의 파일럿, 총 한 자루없이 작은 배를 모는 민간인 모두의 얼굴에 제각각의 사명과 비장함이 서려있다.
거대한 화면은 덩케르크 해변에서 잔교의 끄트머리까지 이어진 병사들의 무력한 행렬을, 먼 바다와 광활한 상공을, 인물들의 표정을 가깝고 먼 곳에서 담는다. 그간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처럼 정교하게 계산되었을 구도와 앵글은 감정을 덜어내고도 강렬한 미장센을 만들어 내고, 한스 짐머의 사운드는 서사와 장면 사이를 채우며 이를 완성한다. 과격한 전투나 잔혹한 장면 없이도 보는 내내 긴장감으로 마음이 조여온다.
한 쪽에서 바라본 역사적 시선 탓에 영국과 연합군에 기울어진 이야기의 흐름은 예상한 만큼이다. 마지막을 장식한 처칠의 연설은 없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전쟁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인물을 쫓다보니 감정이 깊어지기 어려웠다. 기승전결식이 아닌, 계속되는 역사의 한 부분을 꺼내보는 듯한 경험에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와 아쉬운 점은 분명 있다. 그러나 신예와 내로라할 배우들을 한데 섞어 고루 이끌어가는 영화의 서사는 모든 이가 많은 이들 중 하나가 되고,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생존이라는 드라마가 되는 전쟁의 실제와 무척 닮았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아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몰 수는 없다"
어른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민간인은 자신의 배를 몰고 해협을 건너 병사를 실어 나른다. 결정적인 순간 적기를 격추시켜 많은 이들의 탈출을 돕는 파일럿은 연료를 다한 비행기가 멈출 때까지 해변을 날다 적의 총구 앞에 선다. 목숨을 다해 날았던 공군은 무엇을 했냐는 비난을 받고, 살기 위해 다른 아군을 밟고 서야 했던 이들은 영웅이 되어 환대 받는다. 전쟁에서 영웅과 적의 간극은 생존 앞에 무의미할 정도로 좁고 순간적이다.
생존 앞에 내몰린 사람들의 시야와 생각은 무서울 정도로 자신만을 향한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것, 돌아갈 연료조차 포기하고 덩케르크 해변을 향하는 '대의'가 모두를 구한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데 동조하면서도, 어쩌면 알아주지 않을 정의를 향한 고독한 여정 저변의 인간성에 다시금 놀란다.
깨어 있지 않은 모든 순간이 전쟁이다.
살아 있는 매 순간의 존엄을 기억하면서, 크고 작은 개별의 전쟁 속에 함몰되지 않도록 깨어 있는 것. 영화 <덩케르크>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던진 메시지가 아닐까. 경중을 따지기보다, 스스로의 삶이 어떤 방향을 향할지를 고민하는 삶은 어떤 자리에서도 빛이 난다.
그럼에도 의구심이 남는다. 놀란 감독이 아니었다면, 실험적이고 낯선 접근법이 이렇게까지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까. 감독이 그간 보여준 행보 덕에 일정 수준의 기대와 관심이 모이고, 호의적인 관객들로부터 호평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무명의 감독이 같은 영화를 선보였다면,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새롭고 실험적인 영화라 평가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졌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놀란이었기에 가능했다. 놀란 감독의 실력이 만들어 놓은 기대와 이를 저버리지 않는 저력의 합작품이다. 익숙한 방식에 머무르지 않는 크리스토퍼 놀란이기에 가능했던 실험으로 세상은 또 한번 새로운 경험을 맛본다. 이런 감독과 동시대에 살 수 있다는 건 상당한 행운이다.
** 별점을 주자면: 8/10 (스토리:7, 비주얼:8, 연출:10, 연기: 8)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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