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완벽한 토요일 아침
지난 한 주는 가을 학기 성적을 마감하고 학생들 리포트 카드에 소설(?)도 좀 쓰느라, 점심 먹을 틈도 없이 바쁘게 보냈습니다. 올해 신 선생이 가르치는 학생들은 거의 전원이 12학년 입시생들이기 때문에 이번 가을 학기와 다음 겨울 학기 성적이 대학 진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아이들과 학부모들도 무척 예민해지고, 교사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됩니다. 게다가 성격이 강하지 못하고 물러터진 신 선생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이런저런 요청을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편이라, 굳이 안 해도 되는 일까지 만들어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허.
바쁜 한 주를 보내고 맞이한 토요일 아침. 큰 아이는 Destination Imagination이라는 그룹활동의 워크샵이 있어서, 축구를 하는 둘째는 아침 8시 30분부터 경기가 있어서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섭니다.
이렇게 화창하고 아름다운 가을 아침에!
이렇게 온전한 자유라니!
오늘따라 아이들과 아내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커피 한잔 진하게 내려서 속 든든하게(?) 마시고, 하얗게 입김이 나오는 1°C 의 청량한 공기를 한껏 들이키며 달리기 하러 집을 나섭니다.
아, 좋아요. 그냥 좋아요.
이렇게 별 특별한 이유도 없이 행복해지는 느낌에 입이 귀에 걸리고, 그러다 종종 알 수 없는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야외에서 달리기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느낌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지난주에 새로 장만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신상 러닝화를 신었더니 발에 착 붙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뽀잉뽀잉 날아오를 것 같은 쿠션감은 대체 뭔가요. 이대로라면 아마 하루 종일이라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풍이 많이 졌기에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이렇게 파란 하늘과 밝은 햇살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을 아름답게 바꾸어 놓습니다. 단풍잎 다 떨어지고 난 뒤, 춥고 어둡고 축축하기만 해야 할 11월 하순에 이렇게 아름다우면 반칙 아닌가요? 왠지 더 바라는 게 있으면 벌 받을 것 같습니다.
집에 오니 아내가 오늘 점심은 갓 지은 하얀 쌀밥에 오동통한 계란말이, 그리고 대패 삼겹 제육볶음 이랍니다. 아하하, 주말 아침이 이보다 완벽할 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