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점거 구스 한쌍의 어느 슬픈 봄날
2주간의 봄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 월요일 출근길, 교정에 들어서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합니다. 교실과 가까워서 늘 이용하는 건물 북쪽 출입구가 노란색 테이프로 통제되어 있더군요. “대체 무슨 일이지? 봄방학 중에 학교에 도둑이라도 들었나? 아니면 출입문이 고장 났나?” 별 수 없이 건물 반대편으로 빙 돌아서 중앙 출입구로 가는데 캐나다 구스 한 쌍이 보입니다. 지나가는 신 선생을 보며 꽥꽥 울어대기까지 합니다. 겁 많은 신 선생, 무서워서 순간 움찔했는데 다행히 덤비지는 않더군요.
아, 봄이구나! 애순이와 관식이만 봄을 타는 건 아니죠, 캐나다 구스 녀석들도 봄이 되면 부지런히 짝짓기를 하고 번식을 합니다. 녀석들은 아마 봄방학 중에 학교가 빈집인 줄 알고 들어와 살림을 차렸나 봅니다.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왔으면 깨끗하게나 쓸 것이지, 그동안 사방천지에 얼마나 똥을 싸질러 놓았던지 교정이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학교 안뜰 일부 구간에선 거위똥을 밟지 않고 걷기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이 녀석들은 먹이를 먹으면 거의 7-10분마다 배설을 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죠. 천하의 똥싸개들 같으니!
남의 집에서 불법 점거를 하고 있는 주제에 뻔뻔하게도 마치 자기네 집인 양 오가는 사람들에게 꽥꽥거리고 거들먹거리며 뒤뚱거리는 모습이 코믹하게 느껴집니다. 다 좋은데 왜 이렇게 노란 테이프로 출입구까지 막아놓고 출입을 통제하나 봤더니, 벌써 교정 어딘가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놓은 모양입니다.
매년 3-4월은 캐나다 구스들이 짝짓기를 하고 번식을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모든 구스들이 다 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남쪽 미국에서 겨울을 난 캐나다 구스들은 봄이 되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옵니다. 그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우는 일이라 합니다. 의리의 캐나다 구스들은 한번 짝을 맺으면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평생 해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한 번에 평균 5개의 알을 낳는데, 어미 구스가 한 달 정도 알을 품고 나면 부화를 합니다. 그리고 여름을 지나 가을 내내 열심히 새끼들을 키우고 나서, 겨울이 되면 먹이를 찾아 다시 머나먼 남쪽으로 이동을 하는 아주 고된 삶을 살고 있죠.
밴쿠버 지역의 캐나다 구스들은 보통 먹이와 물이 풍부한 공원에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며 그들의 서식지가 갈수록 줄어드니, 가끔 이렇게 사람들의 주거지 한복판으로 들어와서 둥지를 트는 녀석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는 사람의 입장에선 매우 난감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개인이 직접 알을 치우거나 구스들을 쫓아내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일단 관계 당국에 먼저 신고를 해야 하고, 전문가들이 파견되어 상황을 살펴보고 난 후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도저히 사람들과 공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안전하게 둥지를 치우고 알들은 가져가게 됩니다. 그러면 보통 부모 구스들은 알들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가끔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나오기도 한다는데 그들을 탓할 수는 없겠죠.
안타깝게도 이번에 신 선생 학교에 자리를 잡으려 한 구스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새끼들까지 부화하고 나면, 천여 명의 학생들이 바글거리는 학교의 한가운데서 출입구 한 곳까지 막아놓고 함께 지내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출입구 통제 나흘째인 어제 오후, 담당 공무원들이 와서 둥지를 치우고 알들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제발 폐기되지 않고 인공부화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단 며칠간이었지만 정이 들었는지, 하루 종일 둥지 주위를 경계하며 가족을 지키려 애쓴 아빠 구스에게 관식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알과 둥지를 잃고 떠나는 구스 부부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애순아, 관식아, 폭삭 속았수다! 살면 살아져! 부디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서 알도 많이 낳고, 새끼도 많이 키우면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