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네, 비가 와도 달립니다. 레인쿠버 밴쿠버에선 젖는 것이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다행히 부활절을 하루 앞둔 오늘은 이렇게 맑고 화창합니다. 아침부터 파란 하늘을 보니 마음이 설렙니다. 얼른 일어나서 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카메라 챙겨서 집을 나섭니다.
벚꽃이 온 세상에 피어있지만 아직은 아침 기온이 반소매만 입기엔 살짝 춥습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사시사철 애정하는 반바지는 절대 포기할 수 없지만, 상의는 한 겹 더 껴입습니다. 새털같이 얇고 가벼운 바람막이 재킷도 있고, 땀을 순식간에 흡수하고 건조한다는 기능성 소재로 만들어진 셔츠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올드하고 무겁고 투박한 스웨트셔츠(Sweatshirt)에 손이 자주 갑니다. 그것도 가볍고 따뜻한 플리스(Fleece) 소재로 된 것 말고, 면소재로 만들어져 안감이 수건 처럼 되어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이렇게 안감조차 면으로 된 셔츠는 찾기도 힘들더군요. 면소재 스웨트셔츠를 입고 달리면서 땀을 흘리면 옷이 무거워져서 밑으로 축축 쳐집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디 올림픽 나갈 것도 아닌데요 뭐. 중년 아재 혼자 카메라 들고 사진도 찍으면서 설렁설렁 뛰는데 좀 빠르면 어떻고 느리면 또 어떻습니까.
스웨트셔츠를 즐겨 입는 또 다른 이유는 감성의 영역인데요, 이렇게 스웨트셔츠나 후드티(Hooded shirt/Hoodie)를 입고 달리면 왠지 지난 1976년작 영화 “록키”에서 아폴로와의 결전을 앞두고 아침 일찍 혼자 필라델피아의 공사장과 시장통을 달리던 록키 발보아가 된 듯한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시장을 지나 부둣가를 거침없이 질주하며 속도를 올리다가 미술관 앞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 정상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포효하는 장면이 배경음악과 함께 떠오릅니다. 그리고 어느새 록키에 빙의된 듯 신 선생의 입에서도 그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빠바밤~ 빠바밤~ 그러다 가끔은 너무 심취한 나머지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결전"을 앞둔 록키의 두려움이 느껴지면 살짝 눈물이 고일 때도 있습니다. 미쳤나 봐요. 땀으로 범벅이 된 촌스럽게 차려입은 중년 아저씨가 혼자 뛰면서 빰빠밤~ 빰빠밤~ 노래하며 신나다가 다음 순간 눈물을 보이다니...
진부한 신파일 수도 있지만 신 선생은 여전히 “록키”같은 언더독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요, 나이는 어느새 오십 대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내면에는 1978년 성동구 금호동의 어느 골목길에서 코 흘리며 놀다가, 아버지 돌아가신 뒤 갑자기 엄마 따라 강남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네 학교로 전학 와서, 기죽지 않고 인정받고 싶어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 일곱 살 꼬마가 있나 봅니다. 이 녀석 이제는 그만 좀 봤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아직도 수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주간 달리면서 담아 온 벚꽃 만발한 밴쿠버의 봄풍경도 함께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