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카페,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

01- 마네

by 유시


어스름이 밀려 오면 일과를 마친 이들이 하나 둘 모여 드는 곳. 친한 동료나 연인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 한 잔을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서로의 꿈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곳. 바로 카페이다.


카페는 커피나 음료, 가벼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작은 음식점이다. 다른 말로는 커피하우스나 바, 찻집, 소규모의 값싼 레스토랑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편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장소를 통칭하는 곳이다.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소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장소로 이용된다.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 모여 서로 이야기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여흥을 즐기기도 한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그냥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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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의 파리 바티뇰 가에 있는 카페 게르부아(Café Guerbois)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단골로 미술사에서 인상주의를 태동시킨 공간이다. 자신의 스튜디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마네는 화가나 비평가, 작가들이었던 친구들과 함께 이 곳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1869년부터 1872년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이 곳에서 정기적인 회합을 가졌다. 카페 주인도 아예 입구 쪽 두 테이블을 이들을 위한 자리로 지정해 놓을 정도였다. 이때 어울린 친구들로 팡탕 라투르, 스테방스, 뒤레, 아스트뤼크, 드가 등이 있었고, 나중에 졸라, 세잔, 피사로, 모네 등도 합류하였다. 모임의 중심이 마네였던 만큼 이들은 당시〈마네파〉또는 거점 지역을 들어 〈바티뇰파〉로 불리웠고, 이 그룹에서 인상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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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그린 인상주의 화가들의 다른 그림들도 많이 있지만, 우선 마네의 <카페에서>는 비록 데생임에도 불구하고 인상주의의 태동 현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 테이블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토론이 격렬해지자 카페의 웨이터조차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나중에 인상주의 꽃을 피우게 되는 모네가 마네를 만난 곳도 이 카페 게르부아에서였다. 모네의 다음 회상은 당시의 카페 모임 분위기를 잘 말해 준다.


"1869년에 마네가 나를 초대해 바티뇰 가에 있는 카페에서 그와 그의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화실을 벗어나 거기에서 매일 저녁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곳에서 나는 팡탕 라투르, 세잔, 드가를 만났으며, 이제 막 저술가로 입문한 비평가 뒤랑티와 졸라, 그밖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시슬리와 바지유, 르노와르와 같이 갔다. 서로의 의견 충돌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격렬한 토론보다도 더 자극적인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재기를 더 갖도록 하였고, 편견이 없는 정직한 실험을 하도록 고무시켰으며, 우리 생각들이 기어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매진할 수 있는 열정을 제공해 주었다."

- 클로드 모네


인상주의 운동이 시작되는 데 중심축 역할을 했던 마네이니 만큼, 그의 카페 그림들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 이를테면 로트렉이나 드가의 것보다 앞서 그려진 것들이 많다. 이 그림들은 카페의 이런저런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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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은 카페는 대개 어수선하고 소란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구석의 조용한 자리에서 혼자 사색에 잠기거나 책을 읽고 쓰는 사람도 있다. 마네의 <카페에서 글쓰는 남자>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일명 <토르토니 가게>(Chez Tortoni)로도 불리우는데, 토르토니 카페의 노천 테라스에서 정장을 차려 입은 채 음료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신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론 오붓하게 연인들끼리 오는 경우도 있고, 혼자서 연인을 기다릴 수도 있다. 술 한 잔을 앞에 놓고서 말이다. 하지만 카페에서 여자 혼자 앉아 있는 경우는 자칫 남자를 유혹하는 거리의 여인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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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 브랜디>는 카페에 홀로 앉아있는 젊은 여성 노동자 또는 거리의 여인 쯤으로 보이는 여자를 묘사하고 있다. 자두에 포도주 같은 술을 넣고 숙성시킨 디저트인 플럼 브랜디를 앞에 놓고, 그녀는 한 손에 담배를 들고 턱을 괴고서, 허공을 멍하니 응시한 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배경은 카페 루벨 아텐이고, 모델은 드가의 <압생트 마시는 사람>에서도 모델을 섰던 배우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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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파리의 카페는 먹고 마시는 곳일 뿐만 아니라 여흥을 즐기는 곳이기도 했다. 음악이나 춤, 단막극이나 서커스 등이 공연되는 카페도 있었는데, 이를 특별히 카페 콩세르(cafe concert)라고 불렀다. 마네의 <웨이트리스>나 <카페 콩세르>는 바로 이런 곳을 그리고 있다.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손님들 전면에 무대가 있어 무희들이 공연하는 모습들이 뒷배경의 원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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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말년의 걸작 중 하나인 <폴리 베르제르의 바> 역시 이런 류의 카페라 할 수 있다. 폴리 베르제르는 일종의 음악홀이자 버라이어티 쇼 극장이었다. 1869년에 문을 연 폴리 베르제르는 당시 파리의 가장 대표적인 카페 콩세르였는데, 나중에 뮤지컬 공연, 발레, 밧줄 곡예, 오페레타, 마술 등의 레퍼토리가 더해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림에서도 왼쪽 상단의 거울에 공중에서 서커스 그네를 타는 여인의 두 다리가 살짝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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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또한 남녀의 교제나 사랑의 공간이기도 하다. 마네의 <라튈 영감네>는 레스토랑에서 한 젊은 남자가 여인에게 접근하여 수작을 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라튈은 원래 60여 마리의 소를 사육하며 우유를 공급하는 농장으로 시작했는데, 그 무렵 레스토랑으로 변신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이 모두 비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인은 때늦은 점심을 먹는 중이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여인의 허락도 없이 테이블에 다가와 불쑥 무릎 꿇고 앉더니, 왼손으로는 여인의 의자를 잡고 오른손은 테이블 위에 걸쳐 놓다가 급기야는 잔을 잡고서, 여인에게 바짝 다가가 눈을 맞추며 말을 걸고 있다. 그리고 이 작업 현장을 처음서부터 끝까지 나이먹은 웨이터가 커피 주전자를 든 채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작업은 성공했을까.


어쨌거나 카페는 그곳에 오는 사람들의 사연이 만들어지고 쌓이는 공간이다. 그것은 때로 개인사의 전기적 계기를 만들수도 있고, 아니면 먼훗날 되짚어 보는 추억거리 하나 정도를 만드는 데 그칠 수도 있다. 또는 개인들의 열망이 집단적 힘으로 결집되어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쓰게 되는 인상주의의 예와 같이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들 수도 있다.


마네는 평생 이해받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그래도 사후 점진적으로나마 서서히 대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화단에서의 성공을 위해, 살롱전에 20여 년 동안 작품을 출품하면서도 거듭 낙선을 하거나 간혹 전시가 되어도 여전히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던 마네. 어떤 이는 이를 들어 마네가 한평생 결코 성공을 사지는 못했지만, 결국에는 시간을 샀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비록 사후이지만 불멸의 작품들을 통해 당대의 인정과 명성을 뛰어넘어 영원의 시간 속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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