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드가/고흐/마네
19세기에 크게 유행했던 술로 압생트 (Absinthe)가 있다. 향쑥으로 만드는데, 그것의 라틴명인 압신티움(Absinthium)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알코올 도수가 40-85%에 이르는 암록담황색의 독주이다. 예술의 도시인 프랑스 파리에서 화가, 소설가,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 사이에서 그것의 강력한 환각작용이 창작 영감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인기가 많았다.
쓴 맛이 강해 구멍 뚫린 스푼을 술잔에 올려 놓고 그 위에 각설탕을 놓은 다음 술 몇 방울로 적셔 불을 붙이고 서서히 녹아내리면 같이 마신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 불타는 압생트의 모습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압생트 한 잔을 마시면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보게 되고, 두 잔을 마시면 그것이 없는 것같이 보이고, 마지막 잔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른바 압생트 효과이다.
드가의 <압생트 마시는 사람>에 등장하는 두 남녀는 서로 바라는 바가 달랐던 모양이다. 자리를 함께 하고 있지만 서로 바라보는 방향도 다르고, 표정도 시무룩하거나 딴청을 부리고 있다. 동상이몽이다.
압생트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도 당연히 사랑을 받았다. 특히 로트렉이나 고흐 같은 애주가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들은 압생트를 제목으로 하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고흐의 <압생트가 있는 정물>은 1887년 파리에 체류하던 시절에 그린 것으로 비교적 담백하다. 압생트의 도수가 세서 스트레이트로 먹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물에 희석해 먹기도 하므로 이처럼 물병이 함께 그려져 있다. 창문 밖으로 행인들이 자그맣게 보이는데, 앞서 가는 연인들 뒤로 홀로 걷는 행인의 고독한 뒷모습에 평생을 홀로 외로이 살다간 화가의 모습이 투영된다.
이를 포착한 그림이 있으니 바로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빈센트 반고흐의 초상화>이다. 카페에 앉아서 홀로 압생트를 마시는 고흐의 모습을 파스텔화로 그린 것이다. 압생트를 그리거나 마시며 고흐가 눈 앞에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거꾸로 툴루즈 로트렉의 고독을 그린 그림도 있으니, 피에르 보나르가 그린 <카페의 툴루즈 로트렉>이 그것이다.
고흐와 로트렉은 서로의 상흔을 알아보았는지 비교적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나중에 고흐가 파리에서 아를로 내려가게 된 계기도 로트렉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다. 로트렉은 발육장애에 따른 신체적 왜소함과 허약함으로 귀족 가문인 집안에서 거의 추방에 가까운 멸시와 배척을 받았다. 다행히 그림에 소질이 있어 신체적 콤플렉스와 모멸감을 화업으로 뛰어넘는가 싶었지만, 끝내는 이 정신적 외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술에 대한 탐닉으로 빠져들었다. 거의 밤마다 술집을 돌아다니며, 압생트 하나만으로도 부족해 거기에 코냑을 섞은 일종의 폭탄주까지 제조해 마실 정도였다.
인상주의 화가중에 처음으로 압생트 관련 그림을 그린 이는 에두아르 마네이다. 그는 이웃에 사는 콜라르데라는 넝마주이를 모델로 <압생트 취객>을 그려 1860년 살롱전에 출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마네는 그림을 완성해 놓고 그가 한때 6년 동안 나가며 그림을 배우던 화실의 스승이었던 쿠튀르를 초대해 그의 의견을 들으려 했다. 쿠튀르는 이 그림을 보고,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뿐이군. 이 술꾼이 괴상망측한 짓을 구상한 화가인가 봐’라고 대꾸했다. 그후 두 사제는 두 번 다시 서로 만나지 않았다.
처음에 압생트는 포도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서 주로 부르조아들이 마셨지만, 1860년대부터 가격이 크게 하락하여 대중적인 술이 되었다. 카페 보도에 펼쳐진 작은 원탁들은 압생트를 마시러 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심지어 저녁 5시에서 7시 사이의 시간을 사람들은 압생트의 색깔에 빗대어 ‘녹색시간’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이런 대중적 수요에 힘입어 당시 프랑스 전역에 각기 다른 상표의 압생트가 1,000여개 가량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880년대에 이르러서 압생트는 마치 우리의 소주처럼 서민들이 즐기는 ‘국민 술’이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여러 점들의 압생트 관련 그림들은 압생트가 얼마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동시에, 압생트가 예술가로서의 그들의 힘든 삶을 달래 주는 위안처이자 창작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였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들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았을까.압생트 효과를 운운하지만 보고 싶은 것을 실재하도록 만드는 것을 술이 아니라 땀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카페에서 밤새 서로 나누었던 것은 압생트가 아니라, 그들의 꿈을 위해 각자가 오늘 하루 흘렸던 그리고 내일 또 다시 흘릴 땀이자, 그 땀에 담겨있는 예술을 향한 그들의 치열한 열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보고 싶었던, 이루고 싶었던 꿈은 이제 불멸의 실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