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영원한 동경, 기차

03- 모네

by 유시
2016-06-08-07-51-45.png 클로드 모네, 생라자르 역 노르망디 열차의 도착, 1877, 캔버스에 유채, 59.6×80.2cm, 시카고 미술관

19세기 사람들에게 기차역은 여행에 대한 흥분과 동시에 새로운 산업 기술에 대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기차라는 신문물이 파리에 등장한 것은 1837년이다. 그 해 파리-생제르맹 엉 레 간 열차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당시 열차의 속도는 대략 시속 6km 내외였지만, 거대한 쇠덩어리가 그렇게 빨리 움직여 사라지는 것을 본 시민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후 프랑스 내 철도망은 해마다 확충되었으며, 기차의 속도도 점점 빨라져 1880년대 즈음에는 프랑스 내의 어지간한 도시는 모두 하루면 갈 수 있게 되었다.

근대적 교통 수단으로서 기차는 이처럼 이동 시간을 줄여 줌으로써 물리적 공간 거리 또한 단축시켰다. 사람들은 이제 기차를 타고 아주 간단하게 도시를 벗어나 인근 교외나 좀 더 먼 다른 도시, 나아가 대자연으로 쉽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꿈을 기차에 싣게 되었고,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차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야외에서 근대의 여러 풍광들, 특히 파리 근교를 비롯해 노르망디 지역의 해변이나 남부 프랑스의 여러 도시 지역들을 그릴 수 있게 된 것도 이 기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가들은 자신이 직접 기차를 이용해 본 경험이나 교외에 거주하며 오가는 기차의 질주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차나 기차역을 그림의 제재로 삼았다. 그중에서 특히 클로드 모네가 생라자르 역을 소재로 1877년에 그린 그림은 일련의 연작 형태를 취하고 있어 특기할 만하다.

모네는 생라자르 역 연작을 그리기에 앞서 이미 1870년부터 기차를 주제로 한 작품에 관심을 가져 왔다. 1870년 런던에서 <눈보라 속의 증기선> 등 터너의 작품들을 보고 난 뒤 모네는 빛과 증기의 효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모네는 <시골을 지나는 기차>(1870)를 시작으로 여러 점의 기차 관련 작품을 그렸다. 인상주의 운동이 본격화되기 전인 이 초기작은 산업 기계로서 기관차가 아직 미학적 대상은 되지 못하고 그저 나무 수풀 뒤에서 연기로만 등장한다. 그 무렵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서 살고 있었던 관계로 그 지역을 지나는 기차를 여러 버전의 <아르장퇴유의 철교>(1873)로 그리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기차는 철교 위로 겨우 보이고 오히려 기차가 내뿜는 연기가 하늘의 구름과 어울려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눈 위를 달리는 기차>(1875)에서도 기차는 그저 검은 덩어리 물체로만 간결히 묘사되고 있고, 오히려 기차 연기가 눈으로 덮인 풍경 속에서 흐린 하늘과 어우러져 다양한 색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다 파리에 다시 거주하기 되면서 드디어 생라자르 역과 그 역을 드나드는 기차, 그리고 그 기차가 내뿜는 증기가 화가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게 되었다.

클로드 모네, 시골을 지나는 기차, 1870, 캔버스에 유채, 50×6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철교, 1873,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클로드 모네, 눈위를 달리는 기차, 1875, 캔버스에 유채, 59×78cm,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파리에는 총 7개의 기차역이 있지만, 바티뇰 구역에 있는 생라자르 역(Gare Saint-Lazare)은 각지로 출발하는 여러 노선을 가진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번화한 기차역이다. 또한 당시 역 바로 인근에는 화가들의 화실이나 주거지가 밀집해 있어서 일상의 그림 소재로서 생라자르 역이 화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역 주위 근처에는 마네의 화실(1872-1878), 마네의 친구였던 시인 말라르메의 아파트(1871-1875), 화가 고뇌트(Norbert Goeneutte)의 화실(1887-1894), 카유보트의 집(1866-1879), 모네의 화실(1877) 등이 모여 있었다.

그런 관계로 일찌기 마네도 1874년 파리 살롱전에 생라자르 역을 소재로 한 《철도 Le Chemin de Fer》(1872)를 출품한 바 있다. 그 그림을 보면 기차 연기 사이로 생라자르 역 건너편의 자신의 화실 건물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모네가 생라자르 역을 그렸을 때는 아르장퇴유를 떠나 막 파리에 자리를 잡았을 무렵이다. 수 년 동안 시골 풍경을 그리다가 이제 그는 자연스럽게 도시의 풍광을 그리는 것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뒤랑티나 에밀 졸라 같은 비평가들이 화가들에게 당대의 시대를 그리라고 촉구했을 때, 모네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다양화하려고 했다. 특히 마네나 드가, 카유보트와 같이 근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로 평가받기를 갈망하였다. 파리에 돌아와 모네는 당초 도시 정경으로 파리의 눈 풍경을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비평가 친구의 반대로 이를 포기하고, 생라자르 역과 기차를 그리기로 마음 먹었다.

기차는 근대를 몰고 달려 온 주자(走者)와도 같았다. 동시에 기차역은 이 기차가 몰고 온 근대의 다양한 새로운 문물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찬양하는 일종의 신전과도 같았다. 실제 역사의 설계나 건축 자체가 이를 상징화하고 있다. 예컨대 파리 북부역에는 그 곳에서 출발하여 도착하는 각 도시를 상징하는 여신상 9개가 역사 지붕 위와 전면부 꼭대기에 마치 도열하듯 위풍당당하게 세워져 있었다. 또 지금의 파리 동부역인 당시 스트라스부르 역의 경우는 여신상 이외에 역사 내부를 노트르담 성당에서와 같은 장미꽃잎 형태의 멋진 스테인드글라스 반원 창으로 꾸며 아름다움과 함께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모네는 생라자르 역을 그리기 위해 역에 들어가 작업할 수 있도록 역장을 찾아가 허락을 구했다. 생라자르 역 측에서는 그림이 좋은 홍보 수단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화가가 그림 작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각종 편의를 제공하였다.


2016-06-08-07-53-47.png 클로드 모네, 파리의 생라자르 역, 1877, 캔버스에 유채, 75.5×10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단순히 역에 출입하여 이젤을 세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도, 기차의 증기를 제대로 그릴 수 있도록 각 기관차에 협조하도록 한다든지, 심지어 기차의 진출입까지도 지원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모네는 근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생라자르 역을 그린 작품 7점을 완성하고 1877년 '제3회 인상주의 회화전'에 발표하게 된다. 모네는 이를 포함해 총 12점의 기차 연작 작품을 완성하였다.


2016-06-08-07-54-14.png 클로드 모네, 생라자르 역: 열차의 도착, 1877, 캔버스에 유채, 83×101.3cm, 하버드 포그미술관

모네는 생라자르 역 연작을 통해 역 구내의 정경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그렸다. 여기에서 그의 관심은 사람들이 만나거나 헤어지는 곳으로서의 '역'이 아니라, 그 곳에서 느껴지는 동적인 분위기에 모아졌다. 그가 추구한 것은 역 자체의 정확한 모사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끼는 역의 인상이다.


2016-06-08-07-54-38.png 클로드 모네, 파리 생라자르 역, 유럽의 다리, 1877, 캔버스에 유채, 80×60cm,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그것은 역의 마르퀴즈(유리 지붕)를 통해 구름처럼 서리는 연기, 증기 사이로 투과되는 다양한 빛의 효과, 그러한 혼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기관차와 객차의 형태 느낌이다. 기차의 연기 색도 빛의 효과에 따라 때로는 흰 색으로, 때로는 회색이나 푸른 색으로 다양한 색조를 띠며 나타난다. 연기의 형태도 플랫폼의 유리 지붕 아래서는 뭉게구름처럼 몽실거리는 형태를 취하는가 하면, 개방된 역 구내나 철로변에서는 시시각각으로 다양하게 하늘로 분산되어 사라지는 비정형적 소멸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역무원이나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다만 형상으로 그려진다.

근대는 삶의 각 영역에서 여러 모습으로 다가왔고, 새로운 화파로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효과로 드러나는 그 단면들을 여러 각도로 포착해 냈다. 모네에게 근대는 이렇게 생라자르 역에 도착한 노르망디발 기차처럼 희뿌연 증기와 함께 여러 색조로 다가와 피어 오르거나 하늘거렸다. 그리고 생라자르 역은 이 근대로의 여행을 떠나는 출발역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설레이기도 하지만 손을 내밀어 더듬고 휘저어도 결코 잡히지 않는 기차 증기처럼 그 너머는 아직은 알 수 없는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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