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아름다운 그리움, 바다

04- 모네

by 유시
클로드 모네, 푸르빌의 밀밭 길, 1882. 캔버스에 유채, 65×81cm, 프레데릭 해밀턴 콜렉션(덴버미술관 대여)

바다를 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탁트인 시야가 그동안 쌓였던 이런저런 고민거리 속 답답함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바다를 동경한다. 한여름의 청량한 바다이건 한겨울의 황량한 바다이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계통발생을 되풀이하는 개체발생의 무의식적 기억 속에서 심원의 고향인 바다에 무조건적으로 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어린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바다를 대면하게 되면 다들 ‘와, 바다다’하며 환호성을 내지르게 된다. 클로드 모네의 <푸르빌의 밀밭 길>을 보면, 절로 그런 탄성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처음 보는 바다도 이러한데, 그것이 고향이라면 그것도 멀리 돌아와 실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면, 가슴 울꺽하지 않겠는가. 고향은 타지를 떠도는 자들에게 늘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공간이자 되돌아 가고픈 시간이다.

모네는 바닷가 마을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태어나기는 파리였으나, 5살 때 르아브르(Le Havre)로 이사해 나중에 파리로 그림 공부를 떠날 때까지 그 곳에서 15년 가까이 살았다. 르아브르는 센강 어귀의 북안에 위치하며, 영국해협에 면한 번창한 해안 도시이다.

늘 바다를 보고 자라서인지 모네의 초기 그림 중에는 유독 바다 그림이 많다. 1865년 모네가 25살 때 처음 살롱전에 입선하게 되는 데, 그때 그림 2점이 모두 바다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옹플뢰르의 센강 입구>이다.

클로드 모네, 옹플뢰르의 센강 입구, 1865. 캔버스에 유채, 90×150cm, 미국 파사데나 노턴 시몬 파운데이션

모네는 10대 후반 르아브르의 명망가를 풍자하는 만화를 그려 주목을 받았으며, 이 성공을 밑바탕으로 드로잉을 팔아서 돈을 벌기도 하였다. 이 무렵 모네의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인 외젠 부댕을 만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이후 20대 중반인 1864년부터 수 년 동안 부댕을 비롯해 용킨드, 쿠르베, 도비니 등과 함께 노르망디 인근 해안을 돌아다니며 야외에서 바다 그림을 그렸다. 당시 모네는 파리에 있는 바지유의 화실에서 지내며, 중간중간 옹플뢰르나 생타드레스, 투르빌, 에트르타 등 센 강 인근이나 노르망디 지역의 바닷가를 찾아 그림 작업을 하였다. <바늘 바위와 아발 절벽>은 에트르타 지역의 절벽 해안을 그린 것이다.

클로드 모네, 바늘 바위와 아발 절벽, 1886

<생타드레스의 테라스>도 이때 완성한 작품이다. 환상적인 바다 전망이 보이는 이 곳은 모네의 고모 집 윗층 테라스이다. 앉아서 전망을 즐기는 두 사람은 아버지인 아돌프 모네와 고모 소피 르가르드이고, 그들 앞쪽에 서 있는 사람은 화가의 사촌인 잔 마그리트 르가르드와 이 가족의 친구이다.

이 그림을 비롯하여 1867년 생타드레스에서 제작된 그림들은 쿠르베의 해안 풍경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미 이 그림에서부터 인상주의 회화의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정확한 빛의 분포, 활력있게 만드는 불규칙한 작은 붓질로 칠해진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의 사용 등이 그것이다.

클로드 모네,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1867, 캔버스에 유채, 98×130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클로드 모네, 트루빌의 판잣길, 1870, 캔버스에 유채, 50×70cm, 개인소장

20대 후반, 아직 자리잡기에는 이른 나이. 모네는 한때 물에 투신을 시도할 정도로 경제적 곤궁에 처하기도 했다. 이 무렵 그는 집값도 싸고 그림 그리기에도 좋은 데를 찾아 파리 근교 센 강 유역의 벤느쿠르, 페캉, 부지발 근처의 생미쉘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였다. 그러다 1870년 모네는 3년 전에 이미 아들 장을 낳아준 카미유와 뒤늦게 결혼하고,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의 해안 휴양도시 트루빌로 이사하였다.

<트루빌의 판잣길>은 그곳 해안 정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삼색기가 펄럭이는 바다 바람 속에서 구름이 속도감 있게 지나는 여름 하늘은 강렬한 햇빛을 내리쪼이고 있어 주변을 온통 탈색시키고 있다. 모래밭이며 판잣길, 건물 벽이며 차양, 사람들의 옷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림자까지도. 신혼의 들뜬 기분이 풍경을 더 환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클로드 모네, 트루빌 해변에 앉아있는 카미유, 1871

1870년에 그리기 시작해 이듬해 완성한 <트루빌 해변에 앉아있는 카미유>에서 모네는 아내 카미유를 그렸다. 대담하고 자신만만하게 한 필치로 그린 화면에서, 그녀는 양산을 들고 수줍은 얼굴로 살짝 고개를 돌리고 바닷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도 신혼의 행복으로 그늘 속에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말 그대로 살림이 어려울 때 동고동락했던 조강지처였던 카미유의 건강이 1876년부터 안 좋아지기 시작해, 둘째 아들 미쉘을 낳고 나서부터 악화되다가 급기야는 1879년 그녀 나이 32세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화가는 못내 애달팠는지 아내의 임종 순간까지도 그 모습을 담아 그림으로 남겼다.

한편 모네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오슈데의 아내 알리스와 가까워졌다. 오슈데가 파산하자 모네는 그 가족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면서 돌보았는데 카미유가 죽기전이라 카미유의 간병을 알리스가 하기도 했다. 나중에 오슈데가 죽은 다음인 1892년에 이들은 결국 재혼하게 된다.

1882년 모네는 알리스와 아이들과 푸르빌에서 여름을 같이 보냈다. 그리고 <푸르빌의 절벽에서>와 같은 멋진 작품을 그렸다.

클로드 모네, 푸르빌의 절벽에서, 1882, 캔버스에 유채, 66.5 x 82.3 cm, 시카고미술관

그 무렵 모네는 개인적으로나 일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젊은 나이의 아내를 떠난 보낸 지 얼마되지 않은 때이고, 경기가 좋지 않아 그림 판매도 여의치 못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던 때였다. 더욱이 1882년 3월의 제7회 인상주의 전시회 개최와 관련해서도, 화가들 사이에 이견이 분분해 드가가 불참하는 등 일부만이 참여한 가운데 모네도 35점을 출품하였는데, 전시 결과는 입장료 및 판매 수익에서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디에프 항구 주변 지역이 너무 도시적이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네는 아직 어촌으로 남아 있는 푸르빌로 옮겨 그림을 그렸다. 알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모네는 푸르빌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적었는데, 결국 그 해 6월에 알리스와 그녀의 아이들을 불러 그곳에서 같이 여름을 보내게 된다.

푸르빌의 절벽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두 젊은 여인은 아마도 알리스의 딸들인 마르타와 블랑쉬인 듯하다. 모네는 통일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풍경 속에 형상을 집어넣는 문제를 질감과 색조를 통해서 해결하였다. 기운차게 구부러진 짧은 붓놀림을 통해 절벽 위 들풀들은 산들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고, 비슷한 방식으로 여인들의 드레스와 숄도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저 멀리 바다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전경 들풀의 초록 색감도 자연스럽게 절벽 아래 바다 색으로 이어져 내려 가고, 저 먼 바다에 이르러서야 짙은 청색과 배합되고 있다. 바다 색은 다시 수평선 위 파란 하늘로 이어져 올라 간다.

같은 해에 완성된 <푸르빌의 밀밭 길> 역시 아름다운 푸르빌의 풍광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짝 붉은 빛이 도는 밀밭 사이로 길이 나있고 그 고개길 너머로 푸르빌의 바다가 백사장과 함께 펼쳐져 있다. 해안선을 따라 멀리에는 절벽이 우뚝 서 있고, 그 너머로는 뭉개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이 드높다. 붓질이 워낙 부드럽게 이루어져 마치 파스텔로 그린 듯하다. 가히 환상적인 바다 풍경이다.

모네는 일찍이 부댕과의 만남을 통해 야외에서 그리는 그림 기법(plein-air painting)의 유용성을 받아들인 이후 야외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화업 입문 초기서부터 기존의 아카데미 화풍을 가르치는 화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그리고 싶다”며 자신의 방식을 추구했다. 모네가 추구했던 방법은 계속해서 빛의 효과와 색의 병치를 통한 효과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동일한 제재를 대상으로 아침이나 저녁 등 시각을 달리해 빛의 효과가 상이하게 나타나는 것을 집요하게 여러 편의 작품으로 그려냈다. 시간에 따른 빛의 효과를 추적하기 위해서 그는 심지어 화판 여러 개를 동시에 설치해 놓고 달라지는 빛의 변화를 좇아가면서 그리기도 했다. 1882년에 그린 그림 중에서 <디에프 인근 푸르빌>, <안개 낀 날 석양의 푸르빌>, <푸르빌 바다의 석양>, <간조 때 푸르빌의 강> 등을 보면, 같은 푸르빌의 바다를 그린 것이지만 시간에 따라 바다와 하늘 빛깔이 다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이후 모네는 10여년이 지나 그가 작업했던 바닷가를 마치 성지순례하듯이 되돌아보는 여행을 한다. 즉, 1896년에 과거에 자신이 작업했던 곳들, 즉 푸르빌, 디에프, 바렝쥬빌을 여행하며 다시 새로운 영감을 얻고자 했다. 1909년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마저 죽고, 건강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모네는 다시 또 예의 바닷가를 순회하는 여행을 하였다. 1917년에 다시 옹플뢰르, 르아브르, 에트르타, 프루빌, 디에프로 여행을 하였지만, 이때만큼은 여행중에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기력이 많이 쇠해져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 여행 이후에도 모네는 다시 각오를 새로이 해 수련 연작 작업을 계속하였다.

모네를 일컬어 흔히 물의 화가라고 한다. 수련 연작을 통해서도 이 명명의 논거가 더욱 입증되지만, 그에 앞서 일련의 바다 연작을 통해서도 이미 그 이름에 걸맞는 작품들을 보여 주었다. 그에게 바다는 고향이자 그리움이며, 말년에 병들고 지쳤을 때에도 힘을 주는 어머니 품같은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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