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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ug 23. 2016

사랑은 언제 되돌아 오는가
<빛의 집>

01-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빛의 집>과 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3-1954, 캔버스에 유채, 195.4 x 131.2 cm,  베니스 구겐하임미술관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실연한 남자 주인공이 상심하여 외치는 대사이다. 그러나 영화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사랑은 변한다.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은 이들만이 애써 부인할 뿐이다.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소설 <빛의 집> 역시 변심한 애인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다만 특이하게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이 그 사랑의 모험을 매개한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이 <빛의 집>이 되었다. 소설 속 여자는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좋아하였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는 혼자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좋아하는 그 그림이라도 보러 베네치아로.


그 남자 제레미 렉스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 그림을 보다가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림을 보며 그는 두고온 연인 캉디스를 생각한다. '저런 집에서 당신이랑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저 모든 텅빈  방들 가운데 우리의 두 창문만 밝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그러던 와중 홀연 그림의 창문 불빛이 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여 다음날 재차 미술관에 다시 가 전기장치가 없는지 그림 뒤를 눈여겨 보기도 하고 긁어보기도 하는 등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러다 그만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예기치 못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림 속으로 들어간 제레미는 캉디스와 관계가 좋았던 과거의 달달했던 시절로 되돌아가 같이 열락을 즐겼던 그 순간을 다시 체험한다. 그리고 현실로 되돌아 오는데 사실은 그 시간 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져 몇 분 동안 임사체험을 한 것이다. 제레미는 캉디스를 다시 보기 위해 이 특이한 경험을 재연하려 한다.  심리연구소의 실험을 통하기도 하고 점술가의 약초 환각 시술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연인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현실에서 그녀와 맞부딪히지 않는다. 대신 이처럼 자꾸 과거로 회귀하여 그림 속의 환상으로 도피하려 한다. 그의 유일한 미덕은 자살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행히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말미에 이르러 제레미는 캉디스에게 자신의 구애 편력을 이야기한다. 이때 연인 캉디스가 관심이 보이게 되는 지점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제3의 여인과 제레미가 사랑의 행위를 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를 직설적으로 묻는다. 순간 제레미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그래서 사실 그 여인과는 아무런 사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듯하게 과장된 거짓 사랑행위를 고백하는 척한다. 그 질투의 반동에 힘입어 마침내 캉디스는 다시 제레미에 대한 연정을 회복한다.


여기에서 깨닫는 사실 하나. 사랑은 언제 되돌아 오는가. 먼저 한쪽에서 여전히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상대방에 대한 가치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돌아온다. 소설은 캉디스의 침실에 걸려 있는 그림 <빛의 제국> 복제본에서 캄캄했던 창문에 새로운 불빛이 켜지는 것으로 끝난다.


르네 마그리트는 1953년과 1954년 사이에 <빛의 제국>을 그렸다.  그림 제목은 폴 누제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이 그림은 고요한 가운데 신비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하늘은 흰 구름이 떠있는 파란 하늘로 한낮의 시간이지만, 그 아래 집과 나무는 캄캄한 밤의 시간대에 있다. 가로등에 불이 켜져 있고 2층 창문에도 불이 들어와 있다. 이 양립불가능한 낮과 밤의 두 시간대가 한 그림 안에서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적 풍경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그대와 내가 한때 사랑했다는 것, 그러다 헤어졌다는 것, 마지막에는 이렇게 다시 사랑하고 있다는 것. 이 모든 사실들이야말로 양립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보다도 더 초현실적이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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