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다리 위에서

16-피사로

by 유시
피사로, <퐁네프>, 1902, 캔버스에 유채, 부다페스트미술관

다리는 자연적인 장애물인 강의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하는 구조물이다. 분리된 것, 떨어져 있는 것을 이어준다는 점에서 사랑의 연결을 상징하기도 한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이어주는 오작교가 대표적이다. 한편으로는 다리를 건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통과의 의미나 단절과 진입의 의미를 매개하기도 한다.

파리의 퐁네프 다리 연작을 그린 피사로(1830~1903)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맏형으로서 과거의 전통과 과감히 단절하고, 새로운 인상주의 사조를 이끌며 담대하게 당대를 통과하였다. 그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총 8번에 걸쳐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에 모두 빠짐없이 참가한 유일한 화가이기도 하다. 그가 인상주의 화가의 대부로도 불리우는 것은 그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기도 하지만 온유하고 따뜻한 성격에 더해 모나지 않은 균형 감각으로 이들을 아우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93년 60대의 피사로는 눈병이 났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먼지나 바람, 눈부신 햇빛 등이 눈에 안 좋으니 피하라고 권유하였다. 이제 야외 작업은 더 이상 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동안 그는 10여년 전부터 조용한 시골 마을인 에라니쉬르엡트에서 지내며 자연과 농촌 풍경에 천착해 왔다. 하지만 안질환 때문에 이제부터는 할 수 없이 실내에서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실내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보통은 시골에 있으면서 겨울이 되면 다시 파리로 돌아와 창문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광들을 그렸다.

몽마르트 대로 연작이 그러한 작업 속에서 만들어졌다. 실내에서 몽마르트 대로를 바라보고 그린 것들로 상이한 조건하에서 빛과 대기가 주는 다양한 효과들을 보여 주고 있다. 몽마르트 대로 연작은 <흐린 아침>, <겨울 아침>, <햇빛이 비치는 오후>, <밤의 효과> 등으로 이어진다. 피사로의 도시 풍경 연작은 이밖에도 <가로수 길> 12점, <가로수 길과 대로> 8점이 있다. 1898년 뒤랑 뤼엘은 피사로의 파리 풍경화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1900년 11월 피사로는 파리 센강 가운데 있는 시테섬에 집을 임차하고 거기에서 퐁네프 다리를 배경으로 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때 그린 그의 퐁네프 다리 연작은 말년작이 되었다. 73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 2~3년 사이에 7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예술 투혼을 보여 준다.

피사로가 다리를 그린 것은 물론 퐁네프가 처음은 아니다. 그에 앞서 1896년 루앙의 보이엘디외 다리를 그리기도 하였다. 또 퐁네프를 그리고 있는 시기에도 퐁루아얄과 같은 다른 다리도 같이 그리기도 하였다.


피사로, <루앙 보이엘디외 다리의 안개 낀 일몰>, 1896,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미술관


퐁네프(Pont Neuf)는 '새 다리'라는 이름이지만 현재에는 파리 센강의 다리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센강 안에 위치한 시테 섬의 서쪽 끝을 가로지른다. 다리는 섬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구간으로 나뉘는데, 좌안은 5개의 아치로 우안은 7개의 아치로 구성되어 있다.

피사로의 작품 가운데 퐁네프 다리를 직접 그린 것으로는 <퐁네프>(1901), <퐁네프>(1902), <햇볕 아래 퐁네프>, <오후 햇살의 퐁네프>(1901), <비오는 날의 퐁네프>(1901), <퐁네프: 눈의 효과>(1902) 등이 있다. 퐁네프 다리를 그린 그림들의 구도는 모두 동일하다. 번잡한 퐁네프 다리가 그림을 대각선으로 가르고 있는 가운데, 다리 위로는 사람들과 마차가 어지러히 지나고 있는 풍경이다. 라이트뱅크 백화점에서 시테섬의 주거 지역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각 연작은 시간대나 계절의 상이함에 따른 다양한 빛의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피사로, <퐁네프>, 1901, 캔버스에 유채, 45 x 38 cm, 개인소장
피사로, <퐁네프, 안개>, 1902, 캔버스에 유채, 46,5 cm x 55 cm


피사로, <오후 햇살의 퐁네프>, 1901


피사로, <비오는 날 오후 퐁네프>, 1901


피사로, <퐁네프, 눈의 효과>, 1902


한편으로 연작에는 퐁네프 다리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린 작품도 여럿 있다. <퐁네프에서 본 루브르와 센 강>(1902), <루브르를 배경으로 퐁네프에서 본 센 강>(1902), <퐁네프에서 본 겨울 센 강>(1902) , <아침, 겨울햇살, 서리, 퐁네프, 센강, 루브르, 겨울해>(1901년경) , <르부르, 봄>, <퐁네프 테라스와 앙리4세 동상>( 1901) 등이 그것이다.

피사로, <퐁네프에서 본 겨울 센강>, 1902
피사로, <루브르를 배경으로 퐁네프에서 본 센 강>, 1902
피사로, <아침, 겨울햇살, 서리, 퐁네프, 센강, 루브르, 겨울해>, 1901년경.
피사로, <퐁네프 테라스와 앙리4세 동상>, 1901.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피사로 역시 이처럼 퐁네프라고 하는 같은 대상을 가지고 다양한 빛의 효과를 탐구하였다.

어쩌면 뻔한 하루의 일상도 매일매일 다양한 빛깔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것일지 모른다. 저녁 노을을 한번 보자. 어디 단한번이라도 우리가 같은 노을을 볼 수 있던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다를 것이다. 오늘 보고있는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다른 빛으로 물든다. 일생에 단한번 하늘이 선사해 준 선물들을 몰라 보고 그냥 지나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고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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