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자전거 타기

15- 잔도메네기

by 유시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자전거 만남, 1878, 155 X 108 cm,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렌미술관


19세기 말 자전거는 새로운 대유행이었다. 일찌기 1860년대에 프랑스에서 자전거가 등장한 이래 수 십 년 동안 그 형태는 다양하게 진화를 거듭하였다. 그러다 1890년대 들어서 오늘날과 비슷하게 앞뒤 바퀴의 크기가 같아졌으며 체인으로 구동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로써 자전거는 더 가벼워졌고 속도나 안전성, 안정감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러자 중상류층 사이에서 자전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자전거는 이동을 위한 교통 수단일 뿐 아니라 새로운 여가 수단이 되었다. 자전거 경주도 인기를 끌었으며 유명 자전거 선수는 그 시대의 슈퍼스타였다. 1893년도 프랑스의 자전거 보유 대수는 13만대였으며, 5년 후 그 수는 3배까지 증가하였다. 1900년도 파리 클리시 대로를 찍은 사진에서도 마차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신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전거에 대한 열풍은 화가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르누아르의 경우에는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지기도 하였다.

인상주의 화가 그림 중 자전거가 소재로 등장하는 것으로 페데리코 잔도메네기Federico Zandomeneghi (1841-1917)의 그림이 있다. 그의 1878년작 <자전거 만남>을 보면 여인들도 자전거를 애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에 대해 기존의 가부장제적인 보수 시각에서는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심하였다. 하지만 이미 여성들의 바깥 야외 활동은 자전거 타기 이외의 다른 스포츠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잔도메네기의 그림을 보면 공원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두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서 서로 조우하고 있다. 20여년이 지난 뒤인 1896년작 <자전거 타기>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여성들은 멋진 모자를 쓰고 일명 블루머Bloomer라고 하는 무릎 길이의 품이 넉넉한 바지 복장에 종아리 스타킹을 하고서 자전거를 탔다. 근대 여성의 자유와 권익이 신장되어 가는 긴 여정에는 여러 요소들이 등장하고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자전거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하였다.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자전거타기, 1896, 파스텔, 32×40cm

잔도메네기는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에 온 것은 1874년이었다. 그는 이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파리에서 살았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자신의 화풍도 그들과 유사했던 만큼 이후 1879년과 1880년, 1881년, 1886년 전시 등 총 4번의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드가와 가까이 지내면서 파스텔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 1890년대 초부터 파스텔화를 시도하여 나중에는 일가를 이루었다. 소재면에서도 르누아르와 카셋을 따라 여인들의 일상 생활 모습들을 많이 화폭에 담았다.


툴루즈 로트렉, <심슨체인>, 1896, 채색 석판 포스터, 88×124cm

1890년대 자전거 열풍은 프랑스의 포스터 예술과도 관련이 있다. 툴루즈 로트렉은 포스터와 석판화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작업한 다수의 카페 포스터가 있지만 자전거 포스터만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기 이 포스터는 툴루즈 로트렉이 자전거 회사인 심슨체인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그린 것이다. 심슨체인은 1895년 윌리엄 스피어스 심슨이 만든 영국산 자전거 체인이다.

포스터에는 자전거 경기장을 배경으로 멀리 다인승 자전거가 보이고 전면에는 혼자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여럿이 함께 타는 자전거가 같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심슨 체인을 장착한 자전거가 여러 사람이 타고 있는 자전거보다 힘이 더 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왼쪽 하단에 명기되어 있는 L.B. Spoke는 심슨사의 프랑스 대표 매장이다. 오른쪽 뒷배경으로 붉은 단복을 입은 악단들이 보이는데, 이는 자전거 경기중 이들이 연주를 하였기 때문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이 포스터를 그리기 위해 영국의 자전거 경기장까지 가서 현지 분위기를 파악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포스터는 당초 첫번째 디자인이 심슨사로부터 퇴짜를 맞고 두번째로 다시 그린 것이다. 첫번째 포스터는 영국의 자전거 챔피언인 지미 마이클을 모델로 한 것이었는데, 비록 심슨사로부터 거절 당하였지만 폐기하지 않고 200여장을 따로 찍어내 자전거 애호가들에게 판매하였다.


툴루즈 로트렉, <버팔로 경기장의 트리스탕 베르나르>, 1895,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자전거 열풍은 자전거 경주에 대한 인기로도 이어져 자전거 경기장의 인파가 2만명이 넘을 정도였다. 툴루즈 로트렉은 왜소한 체형에 뼈도 약하여 직접 자전거를 탈 수는 없었지만 자전거 경주는 즐겨 관람하였다. 그는 댄서나 서커스 단원들의 동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전거 경주의 움직임이 갖는 아름다움이나 소리, 열기에도 똑같이 매혹되었다.
로트렉이 자전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의 친구인 트리스탕 베르나르 때문이었다. 베르나르는 파리 근교 뇌이에 있는 자전거 경기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자전거 전문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로트렉은 1895년에 친구 베르나르가 자전거 경기장 트랙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린 <버팔로 경기장의 트리스탕 베르나르>를 그리기도 하였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그는 자전거 경기 결과에는 관심이 없었고 경기장이나 그 곳의 사람들에게 더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기가 진행되면서 술 한잔 걸치는 것을 더 좋아하여 매번 만취하기 일쑤였다.
툴루즈 로트렉 이외에도 자전거 경기장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관심을 받았다. 폴 시냑의 경우는 직접 경륜장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1899년작 <경륜장>이 그것이다. 자전거 경주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지켜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폴 시냑, 경륜장, 1899, 캔버스에 유채, 46×55cm, 개인소장

1917년 툴루즈 로트렉의 회고전이 열렸을 때, 잔도메네기는 이 전시회를 위해 마지막으로 그림 하나를 그렸다.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경의>가 그것이다. 이 두 화가는 나이 차이가 23살이나 나지만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다. 툴루즈 로트렉은 젊었을 때 잔도메네기의 화실을 방문하고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가 잔도메네기를 흠모하고 존경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1893년 툴루즈 로트렉은 자신의 친구인 출판업자 앙드레 마티에게 그해 뒤랑뤼엘 화랑에서 열린 잔도메네기의 전시회에 초대하는 편지를 써서 전시회 평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기억들이 잔도메네기로 하여금 일찍 세상을 떠난 툴루즈 로트렉을 추모하는 이 마지막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잔도메네기는 이 그림을 그린 그 해 76세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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