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양산

14-모네

by 유시
모네, 양산을 든 여인: 모네 부인과 아들, 1875, 캔버스에 유채, 100×81cm,워싱턴, 국립미술관

마네의 도움으로 1871년 모네는 아르장퇴유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양산을 든 여인>(1875)는 1875년 여름에서 1876년 사이에 그린 일련의 작품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다. 이때 그린 시리즈물의 풍경은 파리 외곽인 아르장퇴유의 두 번째 집 주위의 정원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의 모델은 모네의 아내 카미유와 그의 아들 장이다. 장은 당시 8살이었다. 그녀는 치마를 휘감는 바람 부는 언덕 위에 양산을 들고 서서 여름철의 정경을 소요하고 있다. 그녀 옆에 있는 아들은 다소 뒤켠으로 물러나 있어 조금은 이들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어 보이고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시각으로 그려져 있어 카미유의 존재가 한층 더 돋우라져 보인다. 언덕 아래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데, 햇빛을 가리는 양산과 인물의 그림자 각도가 서로 빗겨나 있는 것이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림의 실제 주제는 색과 움직임이다. 색을 섞고 그늘을 만들고 붓질로 움직임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 그는 이 풍경을 매우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바람은 언덕 들꽃의 꽃대와 풀잎의 흔들거림 속으로 불어와 여인의 치마폭을 휘감아 올라가 베일과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양산을 한껏 팽팽히 부풀리고 있다. 이같은 생생한 현실감으로 인해 관람자는 마치 그런 바람을 맞으며 야외에 함께 나와 있는 것 같은 개방감을 느끼게 된다.

모네, 양귀비 들판, 1873, 캔버스에 유채, 50×6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78년까지 살았던 아르장퇴유 시절은 모네에게 충만한 시기이다. 폴 뒤랑-뤼엘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는 집 근처에서 외광회화의 잠재력을 탐색할 수 있는 밝은 풍경들을 찾았다.그는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양귀비 들판>을 전시하였다. 양귀비 꽃이 만발한 여름 들판을 어머니와 아이가 거닐고 있다. 이들은 전경과 뒷배경에 각각 한 쌍씩 있다. 여인은 햇살이 그렇게 세지 않은 듯 양산을 옆구리에 끼고서 아들과 함께 들판을 소요하고 있다. 들판은 아르장퇴유의 젠느빌리에 들판이고, 여인과 아이는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을 모델로 한 듯하다. 하지만 인물들은 겨우 식별만 가능할 뿐 그림의 진정한 주관심사는 자연의 풍경이다.

모네, 여름, 양귀비 들판, 1875,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양귀비 들판 그림은 이것 이외에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1875)을 포함하여 4점이 더 있다. 그 중 하나인 <여름, 양귀비 들판>에서도 양귀비 들판을 산책하고 있는 여인과 아이가 등장하고 여인은 햇볕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들고 있다. 양귀비 들판 그림은 1890년 지베르니에서 그린 것도 있다. 하지만 모네가 일련의 양귀비 들판 그림을 연작으로 의도하고 제작한 것은 아닌 듯하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빛의 차이에 따른 색의 변화를 탐구하기는 하였지만, 보다 본격적인 연작은 나중에 형태와 조각 형상을 통해 같은 문제의식을 추구하였던 밀짚더미 연작으로 구체화되었다.

모네, 장과 유모와 함께 정원에 있는 카미유, 1873, 캔버스에 유채, 59×79.5cm, 개인소장

아르장퇴유에서 모네는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없었지만 가족과 함께 나름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가족을 소재로 한 여러 그림들이 이를 반증해 준다. 꽃들이 만발한 집 정원에서 놀고 있는 아들 장과 이를 문간에서 지켜 보고 있는 카미유의 모습을 그린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이 대표적이다.


<장과 유모와 함께 정원에 있는 카미유> 역시도 가족이 등장한다. 하지만 정원 의자에 앉아 있는 카미유의 치마와 양산, 머리색의 색조가 검은 색인데다 상의도 무채색이고 얼굴도 짙은 어둔 색으로 표현되고 있어, 정원의 울긋불긋한 꽃 색깔과 대비되어 오히려 눈에 부각되면서 무언가 차분하면서도 우수에 차있는 분위기를 띤다. 그림이 제작된 1873년은 카미유의 친정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정원 벤치의 카미유 모네>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고 위로받고 있는 카미유의 황망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도 그녀는 어두운 색조의 옷을 입고 있다.

모네, 정원 벤치의 카미유 모네, 1873, 캔버스에 유채, 60.6×80.3cm,
모네, 녹색 양산을 쓴 카미유, 1876,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몇 년이 지난 다음 카미유의 의상이나 그림의 분위기는 다시 부드러워지고 화사해진다. <녹색 양산을 쓴 카미유>가 그 한 예시 그림이다. 그러나 그즈음 카미유의 건강이 약화되기 시작하여 몇 년 고생하다가 결국에는 1879년 카미유는 운명을 달리하고 만다.

1886년작 <양산을 쓴 여인>은 앞서 1875년작 <양산을 쓴 여인: 모네 부인과 아들>의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모델은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의 딸 수잔이다. 이 그림은 지베르니의 야외에서 그린 것이다. 배경은 엡트 강이 센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오르티에라는 작은 섬이다.

모네, 양산을 쓴 여인, 1886, 캔버스에 유채, 131x88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양산을 들고 있는 모습은 앞의 그림과 똑같지만 그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 그림은 여인이 돌아서 있는 방향만 다른 한 짝이 더 있다. 아이만 빠진 채 양산을 든 여인이 언덕 위에 서 있는 구도도 같고 크기도 같다. 다만 하나는 여인이 오른쪽으로, 다른 하나는 왼쪽으로 보고 비스듬히 서 있을 뿐이다.


모네, 야외 사생을 위한 습작: 왼쪽으로 돌아선 양산을 쓴 여인, 1886, 캔버스에 유채, 131 × 88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75년작의 양산을 쓴 여인은 비록 눈의 윤곽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으며, 화가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관람객과도 눈을 마주치게 되어 있다. 하지만 1886년작 양산을 쓴 여인은 눈의 윤곽이 더 희미하게 그려져 있거나 아예 그것조차도 그려져 있지 않다. 화가와 눈빛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1875년작의 여인은 카미유이다. 하지만 1886년작의 여인은 수잔을 그렸지만 수잔이 아니다. 모네의 친구이기도 한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옥타브 미르보가 묘사한 대로, 그녀는 허공 속에서 나타난 환영처럼 보인다. 모네에게 이 환영은 11년 전에 그 모습으로 화가 앞에 서있던 카미유의 환영일 것이다. 카미유의 환영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 황금빛 그림자로 영원처럼 서있다. 녹색 양산을 쓰고서 바람 흩날리는 언덕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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