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정화

92-데이비드 호크니

by 유시
데이비드 호크니, 스튜디오 창의 비, 2009, 종이에 컴퓨터 드로잉 프린트출력, 55.9 x 43.2 cm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기울어진 창문으로 빗물이 한줄 두줄 흘러 내린다. 길을 내지 못한 빗방울들은 그대로 점점이 응어리져 있다. 그 방울들도 더 모이면 스스로 길을 열 것이고, 자리가 좋으면 다른 빗길을 탈 수도 있을 것이다. 비 오는 날에 웬 해일까. 빗방울에도 빗길에도 음영과 함께 반사된 햇살이 투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창틀에는 햇빛으로 그림자가 생긴 빗길의 자취들이 등고선마냥 아로새겨져 있다. 그 자국들도 빗길따라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비가 오면 질척거리는 거리에 우산을 써도 어깨며 바지 자락이지 않을 수 없어 꿉꿉한 느낌이 싫지만, 실내에서 편안히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창문으로 들치는 빗방울이며 흘러 내리는 빗물을 아무 생각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문득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까지 든다. 물의 속성 중 하나는 씻기는 것이다. 신성한 의례의 성수가 아니더라도 흘러내리는 빗물은 거리의 더러움뿐 아니라 마음에 얼룩져 있는 상처나 응어리도 씻겨 줄 수 있다. 비가 그쳐 씻겨 내려 주던 빗길도 멈추면 잠시 마음의 창틀 한구석에 새겨졌던 나이테 같던 상흔도 시나브로 사라질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는 복잡하고 미묘한 문양의 패턴을 단순한 선과 색으로 병치시키는 방식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화풍을 특징으로 한다. 이 그림 역시 이 점을 잘 드러내 보여 준다. 그가 아이패드를 사용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예술의 가능성을 실증해 보여 주고 있다. 김서린 창문 밖 풍경을 그린 은은한 색감 표현은 카메라가 잡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가깝게 다가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이미지를 포착해 내고 있다. 언제쯤 호크니의 그림처럼 삶이 단순명료하고 간결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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