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는 그대를 위해

13 -카렌 홀링스워스

by 유시
2016-04-06-05-56-30.png 카렌 홀링스워스, 물의 꿈, 2009. 36×48cm

바람이 분다. 어느 시인은 그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한때는 나도 바람의 자식이고 싶었다.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자유로이 떠돌고 싶었다. 삶은 이유를 모른 채 부유(浮遊)하기만 했다. 어느 해엔가 남행열차의 맨뒷칸에 서서 흔들리며 바라본 남겨진 철로는 멀어져 가지 않고 줄창 쫓아오고 있었다. 바람이고 싶었으나 기껏 바람이 불 때마다 눕는 풀잎 신세가 되고 말았다. 뿌리를 가졌으나 붙박여 있으니,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 법이다. 그때 같이 길을 나섰던 친구는 벌써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다. 나를 지배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저항했다. 때로는 은밀히, 때로는 드러내 놓고. 하지만 언제인지도 모르게 이미 투항하고 있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어느 장기수가 오랜 복역 끝에 가석방으로 출소하지만, 자유로운 바깥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가려는 장면이 나온다. 엊그제 오후 볼일이 있어 휴가를 내고 나갔다가 일이 일찍 끝나서 시간이 남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다시 사무실에 들어오는데 문득 그 영화가 생각났다.

먼 길을 흘러 흘러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다. 물이 꿈꾸었던 것이 바다였던가, 아니면 이제 다시 뭍을 꿈꾸는 것인가. 홀연히 떠난 자리에는 모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 아무도 없다. 오래 전 읽었던 김춘수 시인의 <부재>가 떠오른다.


카렌 홀링스워스(Karen Hollingsworth: 1955~ ) 간호사가 되려다 화가가 되었다. 미국 조지아 주 아틀란타 미술대학에서 수학하였다. 하얀 창의 실내 정경을 많이 그리고 있다.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초기작에서 아주 예외적이며, 대개 열린 창을 배경으로 한 부재(不在)의 시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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