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명상

03- 에드바르드 뭉크

by 유시

에드바르 뭉크, 생클루의 밤, 1890


푸른 밤이다. 실크해트를 쓴 사내가 어두운 방에서 창가에 앉아 턱을 괴고 밖을 내다 보고 있다. 실내의 불은 꺼져 있어 사내는 실루엣으로만 그 형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저 멀리 강 위로 유람선이 지나간다. 유람선 불빛이 강물에 일렁거린다. 높은 창으로 달빛이 들어와 방안 깊숙이 창문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내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만큼 커튼 자락도 출렁거린다.


늦은 밤 홀로 집에 돌아와 불을 켜려다 말고, 문득 집안에 들어온 달빛이 밝아 어두운 실내에서 잠시 고즈넉이 창밖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일상이 멈추던 그 순간이 기억나는가. 두런두런 방안의 물건들이 다른 모습으로 깨어나 말들을 걸어오고. 오래 잊었던 나 자신이며, 한때는 전부였다가도 이제는 소식도 끊어진 어느 얼굴들이며, 언제 집 나간 지도 모르게 나가버린 젊은 날의 푸른 꿈들이 불쑥 달빛을 타고 내려와 사락사락 되살아나던 그 순간 말이다. 그러다 이윽고 때가 되어 불을 켜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던.....


지금에사 불현듯 깨닫는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불을 끄고 나서야 찾을 수 있나 보다. 왠지 그림 속 사내가 밤새 그 방의 불을 켜지 않을 것 같다. 밤을 지새울 그를 위해, 마스네(Jules Massenet)의 <타이스의 명상(Thais Meditation)>이 청초록의 어두운 방 안에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으면 좋겠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1863–1944): 생클루의 밤(Night in Saint-Cloud, 1890), 캔버스에 유채, 64.5×54cm, 오슬로국립미술관 소장. 노르웨이 표현주의의 대가 뭉크가 젊었을 때 국비장학금을 받아 파리에 유학했을 무렵, 덴마크 친구인 시인 골스테인(Emanuel Goldstein)을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아직 자신의 화풍을 세우기 전인 초기 작품으로 후기인상주의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바로 한 해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어두운 기억들이 작품의 모티프로 작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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