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소통

29- 닐

by 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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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가고 인생 황혼의 길목이다. 그림의 모델들이 앉았던 의자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도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온기는 따스하다. 길쭉한 창의 검은 블라인드는 반만 늘여트려져 있다. 아직은 다 내릴 때가 아니다.

창은 트여 있는 열린 공간이며, 환기든 시선이든 기본적으로는 들고나는 소통의 통로이다. 건너편 건물의 창이 보이지만 그건 소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배경일 뿐이다. 의자의 쓰임새는 앉는 것일 터인데 사람이 없어 텅빈 부재의 공간만이 두드러진다.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보거나 홀로 쓸쓸히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 하나없이 빈 의자 하나로 고독을 형상화하고 있다. 미국의 인물화가 앨리스 닐(1900~1984)이 70살에 그린 <외로움>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그녀는 영혼이 있는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너무 적나라하게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바람에 때로 비율이 맞지 않거나 심지어 괴기스럽게도 보인다. 하지만 외형이 아니라 마음을 그리려 했기 때문에 그녀로서는 보이는 대로 그렸을 뿐이다. 그것은 사실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커리커쳐 같기도 하다. 그녀는 작업을 할 때면 모델이 되는 인물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같이 느끼려고 했다. 그래서 작업이 끝나고 그들이 떠나면 오히려 힘들어 할 정도였다. 그림의 대상 인물로 가까이는 가족에서부터 이웃과 친구들을 그렸고, 심지어 할렘가의 가난한 이민자들이나 거리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구분없이 다양하게 접근하였다. 그녀는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인간의 내면 깊숙히 숨어있는 영혼들을 화폭 위로 불러 내었다.

그녀 스스로도 개인사의 굴곡이 심한 삶을 살았다. 일찌기 25살에 쿠바 화가와의 첫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 얻은 첫딸은 돌이 되기도 전에 디프테리아로 잃었으며 남편과 헤어지면서 둘째 딸도 빼앗겼다. 상실감으로 자살 시도에 정신병원 신세까지 졌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인물화가 심심치 않은 건 아마도 보상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는 약물중독자인 선원하고도 같이 살았는데, 그가 350여점의 수채화, 유화, 드로잉 작품들에 불을 지르는 참변을 겪기도 했다. 또 푸에르토리코 출신 나이트클럽 가수와 사귀어 39살에 첫아들을 얻기도 하였다. 다시 41살에는 공산주의 지식인과의 사이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 이 무렵에는 경제적 형편이 나빠져 두 아들을 키우면서 살기가 팍팍하여 심지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기까지 하였다. 그의 40대는 사회복지 수혜로 근근이 살아가야 하는 나날이었다.

1959년 작 <창에 걸린 모포>는 그 무렵의 어려운 시절을 상징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하얗게 눈이 쌓인 유리창 너머로 건너편 창에 남루한 모포 한 장이 걸려 매서운 바람에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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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여성운동의 성장에 힘입어 60대 후반에야 겨우 주목받기 시작하였으며, 여성운동가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윽고 70대인 1970년대 중반에는 인정받는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가진 유명인사가 되었다. 화가로서의 이 인정은 한창 추상화가 득세하고 팝아트 같은 새로운 실험적 사조가 주류 흐름을 가고 있어도 굳굳하게 아웃사이더로서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결과였다. 사후에도 나름 평가를 받아 2000년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미국내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순회로 이루어졌으며, 국내에서도 2013년에 전시회가 열려 그녀의 작품 15점이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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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상은 화가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고백이다. 그녀가 80살에 그린 자화상을 보자. 다른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인데 누드이다. 그녀의 누드 그림은 사실 여럿이다. 대표적인 것이 앤디 워홀의 상체 누드이다. 가슴의 상흔을 포함하여 육체의 진실을 그래로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가 정작 보게 되는 것은 워홀의 적나라한 영혼이다. 그녀는 말년에 아무런 가식도 없이 모든 것을 다 벗어 던진 모습으로 스스로 자기 자신과 소통하면서 자화상을 그렸다. 실제 사진으로 보는 그녀의 모습은 넉넉하고 인자한 이웃집 할머니 모습이지만, 자기 자신이 냉철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그림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늙고 추레한 육신과 함께 오랜 세월 신산한 삶을 이겨낸 얼굴에는 이제 더 이상 욕망도 없고 고통도 읽히지 않는다. 다만 살아낸 자로서의 거만한 자부심만이 입꼬리에 엷게 묻어날 따름이다. 영혼 수집가로 불리우는 그녀는 이렇게 마지막 수집 목록으로 자기 자신의 영혼을 보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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