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빈센트 반 고흐
고흐하면 대개 사후에야 인정을 받았던 불우했던 예술가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이룬 말년의 그림들을 보면 붓의 터치감은 물론이고 현란한 색채의 구사가 불행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인생을 전혀 짐작할 수 없게끔 만든다.
밝고 화사한 색조의 이 그림은 흔히 노란 집으로 알려진 프랑스 아를의 거처에서 기거하던 화가의 방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 문은 윗층으로 연결되어 있고, 왼쪽 문은 고갱을 위해 준비했던 손님방으로 이어진다. 앞쪽의 창문은 라마르탱 광장과 그 정원에 면해 있다. 방은 부등형 사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벽에는 화가의 친구인 보쉬(Eugène Boch)와 미예(Paul-Eugène Milliet)를 그린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밖에도 형태를 잘 알 수 없는 그림이 몇 점 더 걸려 있고, 실내 가구로는 오른쪽으로 침대와 나무의자 둘, 거울과 탁자, 옷걸이 등이 눈에 띈다.
고흐는 파리에서의 지난했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각오로 아를에 와서 다시 화가들의 공동체 이상향으로 화가 조합을 꿈꾸었다. 그 첫 번째 합류 대상으로 고갱에 주목하여, 그에게 여러 차례 간청한 끝에 응낙을 받았다. 그를 기다리면서 그린 새로운 공동생활에 대한 이상과 꿈에 부푼 기대감이 밝은 색감의 대비를 통해 물씬 묻어난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을 설명하며 말했듯이, 이 그림에는 어떠한 그림자나 음영도 그려 넣지 않았다. 자포니즘에 빠져 있어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앞날에 어떠한 그늘도 드리우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투영되지 않았을까.
아를에서의 평온한 휴식과 함께, 그렇게 다시 충전된 힘을 바탕으로 새로 시작하고픈 마음에서, 오늘의 휴식을 취하는 의자와 침대를 비롯해 내일로 열려 있는 창문의 색은 고흐의 트레이드 색인 노란 황금 색조로 빛나고 있다. 그렇게 그 해만 하더라도 화가의 꿈은 따뜻했었다. 추운 겨울 끝에 화사하게 내리쬐던 남프랑스 아를의 봄 햇살처럼.
고흐는 1888년에 그린 첫 번째 그림을 1889년에 직접 다시 모사하여 2개의 모사본을 더 그렸다. 두 번째 것은 첫 번째 원본의 손상 때문에 동생 테오의 부탁으로 그렸고, 세 번째 것은 화가의 어머니와 누이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 원본보다는 좀 작은 크기로 그렸다. 첫 번째 원본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미술관에 현재 소장되어 있고, 두 번째 모사본은 미국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 세 번째 모사본은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인상주의 화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젊었을 때는 기독교 목회자를 희망하여 벨기에 탄광촌에서 전도사 생활까지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뒤늦게 화업의 길에 들어섰다. 화상을 하는 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으로 그림을 그렸으나, 평생 가난속에서 배우자도 없이 불우하게 살다 급기야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 인정을 받아 전세계적인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