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존 래버리
멀리 산아래 해안선이 돌아나오는 바다에 면한 테라스이다. 두 남녀가 앉아있다. 남자가 앉은 의자 밑으로 신문쪼가리가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일독을 마친 모양이다. 남자는 내처 다른 읽을거리에 몰두해 있다. 반면에 여자는 이런 남자가 탐탁치 않은지 고개를 돌려 골내고 있는 모습이다. 그림의 제목은 <남프랑스의 아침>이다. 하지만 다른 제목으로 <허니문>으로도 불리운다. 그러면 조금 더 상상해 볼 수 있다. 신혼여행을 온 부부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서로 투닥거리고 나서 데면데면하고 있는 상황으로도 보인다.
화가 존 래버리가 이 그림을 그릴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종군화가직을 면한 다음, 아내와 함께 프랑스 남부 연안을 비롯한 지중해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지중해를 크루즈하는 여행에서 몬테카를로 등 프랑스 남부 해안가를 여행하면서 그 지역 풍광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들 그림들에서 묘사된 강렬한 햇빛과 푸른 바다, 해안절벽과 초지 등은 스코트 피츠제랄드의 소설 속 나른한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화가가 함께 여행한 아내는 헤이젤 마틴으로 그가 53살이었던 1909년에 재혼하였다. 그의 첫아내 캐슬린 맥더모트와는 결혼후 2년만에 사별하여 홀로 지내다가 24년 연하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결혼 당시 헤이젤은 29살로 그녀 역시 이미 한 차례 결혼하여 남편을 여읜 젊은 과부였다. 화가는 젊은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녀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400여점 이상 남겼다. 하지만 나이든 남편이 젊은 아내를 건사하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뛰어난 미모를 가졌던 아내는 종종 바람을 피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림을 그렸던 1921년이면 존 래버리는 65살, 헤이젤은 41살이다. 결혼 12년차의 이 아일랜드 출신 영국 화가 부부는 이번 여행을 제2의 신혼여행으로 즐겼을 것이다. 이 그림이 꼭 자신들을 모델로 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나이차 많은 화가 부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이채롭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