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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22. 2017

마음이 먼 데 있으니

97-알렉스 카츠

알렉스 카츠, 밤의 집, 2013

캄캄한 밤이다. 산기슭으로 집 한 채가 있어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키 큰 두어 그루 나무들이 듬직하게 파수를 서고 있다. 왼켠으로 흐릿하게 몸을 누인 호수가 잠들어 있다. 호젓하게 이렇게 외따로 떨어져 있으니 번잡스럽지 않아 좋다. 수묵화의 정취가 배어 나오니, 도연명의 한시 한 구절이 절로 생각난다.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 마음이 먼 데 있으니 스스로 외지다 했다. 그러나 원해서 택하였으니 그다지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풀벌레 소리 따라 잠깐 바람 쏘이러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에 마중 나온 창문 불빛이 여럿 아닌가.


알렉스 카츠(Alex Katz: 1927-   )는  뉴욕 브루클린 태생의 미국 화가이다. 뉴욕 쿠퍼 유니온 미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메인 주(州)의 스코웨건 회화·조각학교에서도 공부하였다. 1950년대 이래로 인물초상을 주로 그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과감한 화면 구성과 대담한 채색, 절제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추상과 구상, 전통과 아방가르드가 맞닿아 있는 현대 사실주의 화풍으로 평가받는다. 이를테면 30대 중반에 그린 자화상인 <통과>의 경우도 아방가르드한 기법과 전통적인 접근을 결합시켰다.  그런데 자화상의 작명이 통과(Passing)라니 재미있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위치하는 존재의 헛헛함을 아는 예술가로 보인다.


어렸을 때 밤이 무서워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서 밤길을 갔던 기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나이 들면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지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어둠에 스며드는 것도 수용하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릴 때 화가의 나이가 86세이다. 여전히 현업에서 뛰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 스스로 자신이 일생 동안 한 것이라고는 그림 그리고 잠자는 것뿐이었다고 할 정도이다. 다른 작품들이 원색의 강렬한 색상으로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게 화면 전체를 검정으로 가득 채운 것이 이채롭다. 이제는 검정색조차도 꺼리낌없이 구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창에 불이 꺼지면 이마저도 추상의 세계로 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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