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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21. 2017

유토피아

96 - 앤 레드패스

앤 레드패스, 망통의 창문, 1948, 합판에 유채, 90.2 x 81.2 cm, 플레밍콜렉션


창문을 앞에 두고 한 여인이 뒷모습으로 탁자에 앉아있다. 창문 밖 풍경으로 단순화된 건물과 나무들이 어지러이 묘사되고 있다. 양옆으로 활짝 열려 있는 창문도 다양한 문양으로 어지럽다. 하지만 단순함과 부드러운 색감 덕분에 혼란스러움으로 빠지지 않고 발랄함을 유지하고 있다. 창밖 풍경을 보는 순간 언젠가 꿈결 속에 마주한 적이 있는 어떤 이상향의 느낌을 받는다.  


영국 화가 앤 레드패스는 1947년 프랑스 남부 해안의 망통 지역을 여행하면서 다수의 스케치와 유화 습작을 그렸다. 스코틀랜드로 되돌아와 이를 토대로 다수의 유화를 제작하였는데, 이 그림도 그중 하나이다.  망통은 1920년대에 그녀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프랑스 남부의 카프페라로부터 동쪽으로 약 32km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아마도 다시 프랑스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녀는 옛날 그 시절을 회상하였을 것이다. 그림의 모델은 그녀의 의붓딸인 에이린이다.


앤 레드패스는 스코틀랜드 갈라쉴즈 태생으로 에딘버러 미술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에 결혼하여 프랑스로 건너가 14년간 생활하였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붓을 놓고 가정생활에만 충실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다시 스코틀랜드로 되돌아 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반고흐, 고갱, 마티스와 같은 후기인상주의에 매력을 느껴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연유로 그녀의 실내 정경 그림은 마티스 풍을 많이 띠고 있다. 1950년대에 스코틀랜드 화단에서 풍경화나 실내화, 정물화 등으로 이름을 얻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자유로운 추상표현주의의 세계로까지 화풍이 확장되고 있다.


복잡한 무늬와 반짝이는 빛은 레드패스 그림의 전형적 특징이기도 하다. 스며드는 듯한 온유한 색조는 보나르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체크 무늬 옷과 줄쳐져 있는 벽지 무늬는 발랄한 패턴의 결합이다. 창문 밖의 단순화된 풍경 역시도 하나의 디자인처럼 비쳐진다. 창턱에 나란히 놓인 선인장은 현실의 역경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햇빛 속에서 빛나는 선인장 가시들의 아우라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진화를 거듭한 선인장의 가시처럼 현실의 고난속에서 끝내 살아 남아야지만 우리가 꿈꾸는 저 먼 유토피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까. 선인장은 원경의 풍경 속 나무들로 멀리 확장되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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