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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Dec 20. 2016

[뉴욕] 모마 미술관 (MoMA)

세련된 감각의 풍성한 현대미술관


모마 미술관은 지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이어 찾은 또 하나의 미술관이다. 지하철역에 내려서 조금 걷다 보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오픈 시간 30분 전에 갔는데도 줄이 꽤 길었다. 여느 미술관처럼 외투와 가방을 맡길 수 있는데 백팩은 되지만 옆으로 매는 여성용 가방과 캐리어는 보관할 수 없다. 숙소를 옮기는 날이라 짐이 꽤 많아서 혹시 못 맡아준다고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역시나 백팩은 맡길 수 있었지만 크로스백은 거절당했다. 그냥 들고 다니려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가방에 있던 휴대용 장바구니에 물건을 옮겨 담은 후 맡겼더니 해주었다. 



미술관 뒤 휴식공간

이날 일정이 빡빡한 바람에 여유를 즐길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 차분히 시간을 보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위에서 내려다 본 내부모습

모마 미술관은 6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4,5 층은 19세기 회화와 조각부터 현대의 작품까지 전시되어 있고 다른 층은 사진, 건축예술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없을 경우 4,5 층을 먼저 관람하고, 여유가 생기면 나머지를 돌아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한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맡겨야 하는데 여권은 불가능하다. 외국에서 듣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조금 낯설었다. 한국어가 유창하기는 하나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이 녹음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몇몇 작품은 영어해설만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




이 아래는 모마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이며 화가 별로 나열했다.


1.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모두 잠들고 휴식을 취하는 고요한 밤에 물결처럼 요동치는 내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류시화 시인의 '시를 평론한다는 사람들에게' 중에서 "내 혼의 무게로 쓰여진 이 시들을 이해하려면 너 또한 네 혼의 무게로 잠 못 이루어야지"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나에게 고흐가 하는 말 같다. 사연은 다르지만 누구나 밤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공감을 준다. 



<우체부 조셉 룰랭(Portrait of Joseph Roulin), 1889>

이전에 한국에서 반 고흐전을 할 때 보았던 작품이라 반가웠다. 왠지 따뜻하면서 친숙한 느낌이 든다.



2.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수련(Water Lilies), 1914-26> 

모마 미술관에 다녀와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모네의 수련 작품이었다. 우선 크기 자체가 압도적이다. 색의 조화도 너무 아름다워서 멀리 보나 가까이 보나 푹 빠져들게 된다. 물, 꽃, 그림자 등을 뚜렷하게 그리지 않아도 한눈에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다. 캔버스 자체가 투명한 연못이다. 어느 부분을 찍어도 너무 아름다워서 마치 아무렇게나 찍어도 항상 화보 같은 모델 같다. 



<수련(Water Lilies), 1914-26>

또 다른 수련 연작 중의 하나이다. 같은 대상을 그렸지만 언제 어디에서 그리느냐에 따라 포착하는 빛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3. 조르주-피에르 쇠라 (Georges-Pierre Seurat)

<포르-탕-베생 항구(Port-en-Bessin, Entrance to the Harbor),  1888>

그림을 보면서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화가 중 한 사람, 쇠라의 작품이다. 점으로 하나씩 찍어서 완성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참 꼼꼼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미술시간에 모자이크를 하면 처음에는 촘촘히 붙이다가 아래로 갈수록 큰 조각들이 남발했던 기억이 난다. 종이 하나를 붙이는 것도 그런데 수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완성을 했을까 싶어 감탄하게 된다.



4.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희망 II(Hope II), 1907-0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나를 한번 사로잡았던 클림트는 여기서 완전히 내 마음을 가져가 버렸다. 형태와 색 모두 매력적이어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인공 여자는 임신을 한 상태인데, 이렇게 임신한 여자를 소재로 해서 그린 그림은 흔치 않다고 한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주인공의 아래에 그려진 여자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5.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아비뇽의 여인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전문지식 없이 그림을 보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화가 중 한 명이 피카소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구경하던 친구가 이 작품을 보고 '그림을 이해하는 건 정말 어렵다. 저 가운데 과일은 대체 뭘 상징하는 거냐'라고 했을 때 처음 과일을 집중적으로 봤다. 항상 여인들의 표정과 자세, 특히 오른쪽 두 여인의 독특한 얼굴에 시선이 뺏겼기 때문이다. 화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그림 속의 사물을 하나씩 떼어내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아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림 전체에서 오는 감정을 단순히 느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6. 움베르토 보치오니 (Umberto Boccioni)

<축구선수의 다이나미즘(Dynamism of a Soccer Player), 1913>

보치오니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래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화가다. 사실 화가의 이름도, 미래주의라는 것도 생소했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한 움직임의 역동성이 시선을 강하게 끌었다. 대상의 형태 자체를 묘사하기보다 대상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모습과 주변의 공기 등을 모두 그림에 담고자 했다.



7. 르네 마그리트 (Renee Magritte)

<빛의 제국 II(The Empire of Light II), 1950>

르네 마그리트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우연히 그의 작품 전시를 방문하고 미술 관람의 매력을 알게 되어 꾸준히 미술관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낯설지 않은 사물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나타낸 작품들이 재미있다.

'빛의 제국'에서의 하늘은 낮이지만 아랫부분은 밤이다. 이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함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이나 현상을 파악할 때 몇 가지 단서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고는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른다. 몇 가지 선한 행동이나 말에 다른 측면도 선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반대로 악한 행동 하나에 완전한 악인으로 낙인찍는 것이 그러한 경우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선한 측면과 악한 측면은 공존하기 마련이며 그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할 때가 있다. 이 작품은 그것을 한 화면에 명료하면서도 아름답게 나타냈다.



8.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작품 3번/13번(No. 3/No. 13), 1949>

'레드'라는 연극으로 알게 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다. 경계가 모호한 색들의 배열과 조화로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9.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하나:31번(One: Number 31), 1950>

잭슨 폴록은 붓이나 막대기로 물감을 흩뿌리거나 페인트 통의 물감을 부어 작품을 완성하는 화가이다. 우연한 효과로 나타난 선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에 그의 작품 사진과 작업 방식을 듣고 당시 내가 생각하던 예술가의 이미지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유스러움 속에서 드러나는 전문성이 참 매력적이었다. 



10. 앤디 워홀 (Andy Warhol)

<캠벨 수프 통조림(Campbell's Soup Cans), 1962>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작품이다. 요즘도 판매되고 있는 캠벨 수프 통조림이 종류별로 나열되어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던 미술을 확장시켜 대중이 모두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일상적인 소재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정의한다면 그와는 약간 동떨어진 작품이지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여긴다면 완벽한 작품이다. 사진이 생기기 전의 회화는 대상을 완벽히 묘사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로 그러한 것이 의미가 없어졌고 모양과 색을 변형시켜 화가의 주관적인 시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워낙 다양한 작품들이 많아서 차별화를 위해서는 창의성과 기발한 표현방식이 필요해졌다. 그 시작점에 앤디 워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래부터는 그 외의 현대 미술 작품들이다. 

<Bruce Nauman, 'White Anger, Red Danger, Yellow Peril, Black Death', 1984>

서서히 회전하는 의자가 걸린 이 작품을 보고 회전목마를 생각했지만 제목은 살벌했다. 이는 정부에 의해 행해졌던 고문들을 의자로 형상화하여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브루스 뉴먼은 이 작품으로 아직은 말할 수 없어 알려지지 않았을 사건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었다.



<Richard Serra, 'Delineator', 1974-75>

바닥과 천장에 거대한 검은색 철판이 교차하여 붙어있다. '마음껏 올라가세요.'라고 쓰여 있어서 조심스럽게 그 위에 올라 한번 걸어봤다. 보기에는 얇지만 무게가 상당해서 천장에 부착할 때 튼튼한 안전장치가 필요했다고 한다.  



<Alberto Giacometti, 'The Palace at 4 a.m.', 1932>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들은 주로 가늘고 뼈대만 앙상한 듯한 느낌을 준다.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인간의 본질 만이 남겨진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그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인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얇고 가느다란 나무 막대들과 중간에 매달려있는 유리판은 언제든지 깨어지기 쉬운 관계를 의미한다.



<Alessandro Becchi, 'Anfibio Convertible Couch', 1971>

세로로 반 접으면 소파로, 펴면 침대로 변하는 작품이다. 당시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판매되고 있는 디자인이다. 여기에 누우면 바다 위의 고무보트를 타고 가는듯한 느낌이 들 것 같다.



<Joe Goode, 'Shoes, Shoes, Shoes', 1966>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작품을 보고 잠시 혼자 타지에서 머물게 된 집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기대반, 걱정반으로 바라봤던 생각이 났다. 처음 보는 계단은 항상 무언가를 만나기 전의 설렘과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생각보다 모마 미술관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다음 여정에 무리가 있었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작품들도 많았고 건물과 주변 환경도 참 마음에 들었다. 비록 계획을 세웠던 그날의 일정은 다 소화해내지 못했지만 모마 미술관에서 크게 만족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내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시간과 체력 때문에 포기하고 모마 미술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은 내가 갔을 때에는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는데 못 찾고 있을 뿐이라는 기대감으로 안내원에게 물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쉽지만 이전에 한국에서 미국미술전을 할 때 몇 가지 본 것으로 우선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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