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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Oct 06. 2016

[도서] 죽여 마땅한 사람들

정당한 살인은 묻어두어도 괜찮은가


표지는 달달한 분홍색이지만 제목은 섬뜩하다. 그러고 보니 위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의 그림이다. '내가 누군가를 살릴지, 죽여도 될지 판단할 수 있다'라는 주인공 릴리의 시각인 듯하다.


이 책은 각 장마다 일인칭 시점이 전환된다. 릴리, 테드, 미란다, 브래드, 킴볼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나오고 한 등장인물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설명하기도 하며 시간도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같은 일이어도 각 시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살인을 당하는 피해자도 죽기 직전까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대부분 스스로 죽임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는 듯한 글로 끝나서 '죽지 않았나?' 싶었는데 다음 장의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이 결국은 죽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새 정이 든 등장인물과 작별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이야기에서 싹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책은 릴리와 테드라는 서로 낯선 두 남녀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된다. 테드는 자신의 부인 미란다가 바람을 피우는 걸 목격했다며 그녀를 죽이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털어놓았다. 그러자 의외로 릴리는 그러면 부인을 죽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 이후로 릴리와 테드, 미란다와 그녀의 애인 브래드, 이들의 사건을 조사하는 킴볼의 관계가 얽히며 줄거리가 이어진다.

  

릴리는 너무 자유분방한 부모님을 둔 덕에 어릴 적부터 일찍 성숙했다. 테드를 만나기 전 어린 시절에 엄마가 방을 내어줬던 예술가 쳇과 자신을 배신한 남자친구 에릭을 살인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치밀한 계획과 의연함으로 발각되지는 않았다. 살인을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지만 릴리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쳇은 아직 꼬마였던 릴리에게 성적으로 폭력을 가하려고 했고 에릭 또한 뻔뻔하기 이를 데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통 사람이라면 살인은 제외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찾거나 그것도 되지 않으면 '어디서 천벌이나 받아라'라고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릴리의 문제 해결 방식은 달랐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그 사람이 살아봤자 같은 짓을 반복할 것이고 그러면 사회악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아예 제거해버린다. 


이야기가 후반으로 이어질수록 릴리가 이성을 잃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반에는 '나에게 참을 수 없이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처벌한다'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점점 살인에 중독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이러한 일을 해냈는데 아무도 알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는 릴리는 살인을 하나의 도전 목표로만 여기는 연쇄 살인범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을 때에도 바로 살인을 실행에 옮기는 릴리가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되뇌지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되뇌는 말처럼 무의미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릴리는 살인을 마치고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런데 그녀가 시신을 숨겨둔 우물 위로 호텔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 오픈 결말이다. 공사 중에 우물 안의 시신이 발각될까, 그렇지 않을까. 결말이 확실히 났다면 그걸로 정리가 되었을 텐데 계속 생각을 거듭해보게 된다.


우물에 시신을 매장할 때 위에 흙을 덮었기 때문에 공사장 인부가 열어보고는 '이건 그냥 시멘트로 메꾸어야 되겠다'라고 판단해서 넘어가게 될지, 아니면 그 주변 모든 부지를 갈아야 해서 몽땅 뒤집어 엎어놓을지 생각해봤다. 큰 호텔이 아니라도 지하층을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발각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번 살인에도 릴리가 무사할 것임을 강조하다가 갑자기 편지가 등장하는 걸로 보아서 결국에는 발각되는 것으로 작가가 은근히 반전을 내비친 것이 아닐까 싶다.

책 뒤에 글을 남긴 옮긴이는 릴리의 부모님이 시신을 먼저 발견하고 치웠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 근거 중 하나는 아버지가 공사를 알리는 편지 말미에 '아빠는 널 사랑하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거다.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라고 쓴 것이었다. 근데 나는 그 말이 '시신은 발견했지만 치우지 않았다'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리고 릴리의 부모님은 좀 특이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모든 게 그냥 기우일 뿐이고 단지 아버지가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릴리가 저지른 살인들이 세상에 밝혀진다고 해도 당사자는 크게 괴롭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해낸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릴리가 생각하는 사회악들을 처벌해왔지만 지금은 릴리 그녀 자체가 사회악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도 괜찮은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공연에 올려진 모습을 상상하며 읽었는데 영화로 이미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주인공들은 누가 맡게 될까. 작가가 희망하는 배우들이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영화가 나오면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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