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라잉로빈 Oct 12. 2016

[영화] 최악의 하루

담백하게 최악의 상황을 그려내다


영화 '최악의 하루'는 자신이 만났던 남자들로 인해 하루가 꼬여버린 여자 이야기다. 배우 지망생인 은희는 연기 연습을 마치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남산에 가던 중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에게 길을 안내한다.  

한국어를 못하는 료헤이와 일본어를 모르는 은희는 서로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친근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내 남자친구의 독촉 문자를 받고 남산으로 향한다.



남자친구 현오는 이제 막 떠오르는 신인 배우이며 은희와 친구처럼 투닥거린다. 은희가 자신과 사귀던 중 이혼남과 만난 걸 끄집어내며 괜한 싸움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은희도 현오가 잠깐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았던 걸로 불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은희는 현오가 촬영장으로 간 사이 남산을 산책하다 운철을 만난다. 운철은 은희가 사귀었던 이혼남으로 현재는 헤어진 상태다. 그는 부인과 재결합을 하기로 했지만 마음만은 은희에게 남아있다며 애절한 모습을 보인다. 은희 역시 마음을 추스리기 힘든 모습을 보인다.



남산을 돌며 절묘하게 현오와 운철 각각 한 사람씩 만나왔지만 결국에는 셋이 맞닥뜨리게 된다. 두 남자는 배신감에 은희를 떠나 남산을 내려간다.


   

원래 이 영화의 제목은 '최악의 여자'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은희가 두 남자를 한꺼번에 만나면서 각각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달랐다. 남자친구 현오에게는 다소 가벼운 말투와 행동으로 대하지만 운철 앞에서는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변한다. 그리고 현오와 이야기 할 때는 운철과의 만남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굴었지만 정작 운철에게는 못 잊을 사랑이었다고 말하며 눈물까지 보인다. 은희의 그런 모습이 마치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긴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물론 저는 원하는 것을 드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 거예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커피 좋아해요? 저는 커피 좋아해요. 진하게,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는."


하지만 은희는 거짓으로 상대방을 대한 것이 아니라 각각 두 사람을 만날 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누구인가에 따라 행동과 생각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이 좋아할 법한 말을 하고 그에 맞추어서 행동하는데, 상대방이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대하며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지만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진짜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어도 뒤돌아보면 그때의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뒤돌아 나오며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던지 혹은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지는 때가 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친구에게 '배우들은 좋겠다. 연기할 때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니까.'라고 말하자, 친구가 '그러다 정작 본인의 삶은 못 살 수도 있잖아.'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은희가 두 사람에게 연기를 한 것이고 그때만큼은 진심을 담았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진짜 감정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남자와 헤어지고 남산에 혼자 남아있던 은희는 낮에 길을 가르쳐줬던 소설가 료헤이를 다시 만난다. 료헤이는 새로운 소설의 줄거리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예요."


낮에 료헤이를 인터뷰하던 기자는 그에게 왜 소설 속의 인물들을 위기에 넣고 꺼내주지 않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은희에게 말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소설 속 인물에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은희의 이야기는 료헤이의 소설이고 거기에 작가가 뛰어들어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이 어떻게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왠지 앞으로 잘 풀려나가겠다 싶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때 누군가가 나타나 저렇게 말을 한다면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인공이 한 장소에서 한 가지 옷을 입고 하루에 일어난 일을 담은 영화다. 단조로웠지만 은희가 처한 상황이 복잡해서인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한 배경 덕분에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 대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서] 죽여 마땅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