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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Oct 17. 2016

[영화] 위플래쉬(Whiplash)

천재를 위한 채찍질


예고편 조차 보지 않아서 내용을 전혀 몰랐지만 관람하며 온몸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좋았다. 위플래쉬는 재즈로 시작해서 재즈로 끝나는 완전한 음악영화다.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대학생 앤드류는 사람과 사귀는 것도 멀리하고 밤낮으로 연습에 매달리지만 보조 드러머로서 악보를 넘겨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서 명성이 자자한 교수, 플렛처의 눈에 띄어 그가 이끄는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플렛처는 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딱딱한 말투와 행동과는 달리 앤드류에게 좋은 실력을 가졌다며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준다. 이에 긴장이 풀어진 앤드류는 플렛처가 묻는 가족사나 출신 등을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칭찬에 내심 우쭐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플랫처는 사실 어마어마한 독설가였다. 앤드류가 친 박자가 마음에 안 들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이전에 이야기를 한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험한 말을 마구 퍼붓는다. 들으면서 내가 마치 앤드류가 된 것처럼 화가 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마 영화에 가장 많이 나온 대사는 "Not my tempo(박자가 마음에 안 들어)", "Were you rushing or were you dragging?(네가 친 박자가 빨랐던 것 같아, 느렸던 것 같아?)"가 아닐까 싶다. 끝나고 나서도 귀에 맴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만일 자신이 친 박자에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말하지 못하면 뺨을 때려서라도 알게 만든다.




연주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치는 플렛처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 앤드류는 연습에만 매달린다. 결국 그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겨 호감을 느끼던 여학생에게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통보한다.




드러머로서 자리를 지키겠다는 앤드류의 집착은 더욱 커져간다. 공연장에 가던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크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라가 드럼 스틱을 잡지만 결국 연주를 하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로 플렛처의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인지하고 제재를 가한다. 사실 예전부터 플렛처의 엄한 지도 방식은 유명했다. 그가 이전에 가르쳤던 한 제자는 졸업 후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계속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감이 극심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앤드류의 증언으로 문제가 더 확실시되어 플렛처는 정직을 당한다.


앤드류도 드럼을 잠시 접고 있다가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던 플렛처를 만난다. 그는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기를 바라는 마음에 몰아세웠다고 말한다. 만일 '그만하면 되었어, 잘 했어.'라고 한다면 학생들이 그 자리에 만족하고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아서 결국 진정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는 앤드류에게 자신이 지휘할 예정인 공연에 드러머로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앤드류는 고민 끝에 연주에 참여하지만 거기에는 플렛처가 파놓은 함정이 있었다. 플렛처가 앤드류로 인해 자신이 처벌받은 것을 알고 사전에 알려준 곡과 전혀 다른 곡을 공연에 올려 앤드류가 망신을 당하도록 한 것이다. 혼자 밴드의 연주에 따라가지 못하던 앤드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드럼으로 다른 연주자들을 리드하는데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이자 엔딩이다. 플렛처의 자극이 앤드류를 최고의 경지로 이끌었고 플렛처는 사사로운 감정은 접고 스승으로서 그가 끝까지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예술을 위해서는 가혹함도 불사해야 하는 것인가'하는 비판이 일었다고 한다. 꼭 예술이 아니어도 어느 한 분야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말랑말랑한 격려와 즐기는 마음보다 강렬한 비판과 불안한 압박감이 더 효과적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단기간의 레이스에서는 후자의 효과가 좋겠지만 길게 끌고 가야 하는 경우에는 전자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비판과 스트레스가 필요하다고 해도 꿈과 목표를 이룬 후에 행복을 느끼지 못할 정도라면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면서 성장을 위한 채찍질이라고 정당화할 위험도 있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상황들이 앤드류의 천재성을 끌어올렸지만 이후에 그가 드럼을 치며 행복해했을지는 알 수 없다. 플렛처는 제자들의 삶보다 진정한 음악을 추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앤드류 역을 한 마일즈 텔러는 실제 드럼을 연주한 경력이 있어서 모든 장면을 스스로 소화해냈다고 한다. 플렛처 역의 J.K. 시몬스도 연습을 통해 바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을 완성했다고 하니 열정이 대단하다. 피아노 곡의 제목은 'Fletcher's Song in Club'으로, 악마 같던 플렛처도 그때만큼은 따뜻해 보일 정도로 좋았다. 장면 하나하나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이 엄청나서 영화가 끝난 뒤 100분 동안 함께 연주를 한 것처럼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든지 지쳐도 좋으니 이러한 음악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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