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라잉로빈 Oct 19. 2016

[영화] 남과 여

끝을 알고 시작한 사랑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의 치료 겸 교육을 위해 핀란드에 온 여자, 상민은 아들이 혼자 학교 캠프에 가는 것에 불안해하며 따라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교사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상심에 빠져 있던 중 학교 주차장에서 남자, 기홍을 우연히 만난다. 기홍의 딸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상민의 아들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 상민은 기홍에게 부탁해서 아들의 캠프장 근처까지 가지만 멀리서 바라보고는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기홍은 상민을 보고 자폐아인 아들을 한시라도 떼어놓기 힘든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상민을 말리는 대신 먼발치에서 캠프장을 볼 수 있게 해주며 안심을 시킨다.




돌아가는 중에 폭설이 내려 도로가 끊기는 바람에 둘은 숙소에 머물게 된다.




다음날 아침, 산책을 하는 기홍을 상민이 따라나서며 함께 걷다가 한 오두막을 발견한다. 그리고 둘은 관계를 갖고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진다.




한국에 돌아온 상민은 아들과 남편, 회사 사이에서 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그녀의 앞에 기홍이 나타난다. '일하는 곳이 남산 아래에 있어서 매일 언덕을 올라 다녀요'라는 상민의 말 한마디에 회사를 찾아낸 것이다. 그만큼 그가 그녀를 마음에 담아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이후로 둘은 간간히 연락을 하며 만나는 사이가 된다. 적극적인 기홍과는 조금 다르게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이성적인 상민은 약간의 거리를 두며 지낸다.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상민의 남편은 상민과 기홍이 서로 잘되었으면 하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상민의 아들을 맡아주는 사람이 젊은 여자여서 혹시나 하는 의심 혹은 바람이 있었는데 그런 나의 어두운 생각을 비난하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경정신과 의사답게 자폐증에 걸린 아들을 잘 돌봐주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기홍의 부인은 조증을 앓고 있어서 감정 기복이 심했다. 기홍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가끔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그 때문인지 딸도 정서적으로 불안하다. 그런 가족들 사이에서 기홍은 깊은 외로움을 느꼈고 갑자기 다가온 사랑인 상민을 붙잡으려 한다.




기홍의 부인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죄책감이 커진 상민은 이별통보를 한다. 둘이 대화를 나누던 중 상민은 아들이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고 기홍과 함께 찾아 나선다.




이 장면에서 가까스로 아들을 찾아낸 상민이 의외로 차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보통 온전치 못한 아들을 잃어버리면 울고불고 뛰어다니다가 발견 후에는 마구 달려가서 부둥켜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정표현을 억제하는 성격인 상민이 그러한 일을 많이 겪어온 엄마로서 보여준 강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둘은 헤어지지 못하고 마음은 점점 깊어만 간다.




상민은 결국 남편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며 고백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뭐야?!'라며 화를 내고 펄펄 뛰지 않을까 싶은데 '이상민, 여기 와서 앉아봐. 얘기 좀 해'라고 하며 차분한 모습을 보인다. 신경정신과 의사여서 그런 건지 내 눈에는 불륜사실을 고백하는 환자를 상담해주려는 사람 같았다. 너무 갑자기라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은 듯 보인다.




기홍의 부인은 자신이 병이 있음을 인정하고 남편에게 잘하려 노력한다. 딸도 어느 정도 호전이 되어서 아빠를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한다. 기홍은 이러한 가정을 깨뜨리기에는 너무 섬세하고 착한 남자였다. 결국 가족을 데리고 핀란드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낸다. 상민이 기홍을 찾아오지만 멀리서 그가 가족과 있는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린다. 기홍도 상민이 왔다는 것을 알고 뛰쳐나가지만 딸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깨닫고 쫓아가지 못한다.




상민은 택시를, 기홍은 가족을 태운 차를 타고 서로 다른 길을 간다. 만약 둘이 잘되었더라면 영화를 본 직후에는 기분이 좋았겠지만 마음 한 켠이 계속 찜찜했을 것 같다. 힘든 상황이었고 외로웠다는 이유로 잘못된 사랑을 응원하는 건 그다지 개운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은 행복하게 살았어요'라는 결말의 동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러한 영화를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욱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다.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 건 관계를 가졌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각자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며 외로움을 느끼던 두 사람이 눈이 펑펑 쏟아지는 길을 같이 걸을 때, 힘든 삶을 함께 헤쳐나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 그리고 아빠 혹은 남편이기 전에 여자, 남자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 여행하는 것 같다'라는 대사에서 둘이 이루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을 때만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행이 생활이 되면 또 그에 따른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함께 해결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만나 그것을 잊으려 했던 두 사람에게도 역시 언젠가는 시련이 오기 마련이다. 한 번 떠나본 사람은 두 번 떠나기 쉽기 때문에 만약 둘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영원히 함께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잔잔한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장면들로 채워져 있는 영화였다. 예전에 학교에서 광고심리학이라는 수업을 들을 때 누드 광고일 경우 종이 질 하나에서도 저속함과 예술성을 오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처럼 불륜을 다루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데에 영상미가 큰 몫을 했다.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과 말투의 역할이 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위플래쉬(Whiplash)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