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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Jun 25. 2017

[전주] 전동성당과 경기전

과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전주의 명소


버스에서 내려 전주한옥마을 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전동성당이 보였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서 성당만 사진에 나오게 찍기가 꽤 힘들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아름다운 성당임과 동시에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건축물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천주교 박해로 신도들이 처형된 부지를 프랑스의 신부가 매입하였고 서울 명동성당을 지은 신부가 설계를 맡아 23년 만에 전동성당을 완공하였다. 처음에는 순교지였던 풍남문 밖에 세워져 있었지만 이후에는 확장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겨울이라 푸르거나 알록달록한 풍경은 아니지만 나름 분위기가 있었다.


전동성당의 내부모습


순교한 천주교도들을 기리는 동상





경기전은 전동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이드 시간에 맞추어 입장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경기전 입구에서 사진 찍는 걸 깜박했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지금도 후손들이 모여 제를 올린다. 날씨가 흐려서 사진이 어둡게 나오는 바람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위 사진은 붉은색을 띠고 있는 홍살문이다. 잡귀나 액운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한다.


태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건물이다. 여기에 있는 초상화는 모사품이고 실제 어진은 경기전 안에 있는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있다. 홍룡포를 입었던 다수의 조선시대 왕들과는 다르게 태조는 이 어진에서 청룡포를 입고 있는데, 2016년에 홍룡포를 입은 노년의 태조 어진이 새로 제작되어 전시되었다.

왕이 생존해 있을 때 직접 바라보며 그리는 것은 도사(圖寫), 기존의 어진을 본 떠서 그리는 것을 모사(模寫), 왕의 사후에 그리는 것은 추사(追寫)다. 초상화를 몇 개 그릴지에 대해서는 왕의 마음에 달려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적게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여러 점을 남겨두었다고 해도 중간에 소실되는 경우가 많아서 예로부터 전해지는 어진은 손에 꼽을 정도다. 손실된 어진은 기록을 바탕으로 한 상상에 의존하여 제작되었다.


여기 있는 큰 솥은 화재를 막기 위한 '드므'이다. 실제로 대비하는 용도도 있겠지만, 화재를 일으키는 화마가 왔다가 물에 비치는 본인 얼굴을 보고 기겁해서 도망가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겨울에는 이렇게 얼기 때문에 밑에 불을 지펴 얼지 않도록 했었다.


경기전의 풍경


조선의 실록이 보관되어있던 경기전 내의 전주사고다. 바닥이 띄워져 있는 이유는 통풍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실록을 말에 싣고 줄 지어 가는 그림이 있었다. 실록은 조선 전기 때 서울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보관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전의 참봉 오희길은 전주사고에 있는 실록이 훼손될 것을 걱정하고 선비 손홍록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손홍록은 이를 받아들여 고향 친구였던 안의, 조카 손숭경, 하인들과 함께 실록을 옮겨 동굴에 보관하였다. 그 결과 다른 곳에 있던 실록은 훼손되었지만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은 보전할 수 있었다. 

당시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은 총 805권 614책이었으며 63상자에 달했다. 그 많은 양을 말에 싣고 산속으로 들어가기가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 책임감이 실록을 구해냈다.


태조 이성계와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이 전시되어 있는 어진박물관이다. 이 중에 세종과 정조 어진은 전해지지 않아 추정해서 그린 모습이라고 한다. 영조의 어진은 반신상의 모습으로 전해졌으나 전신상으로 모사되었고, 철종의 어진은 화재로 손실된 부분을 복원하였다. 겨울에 오랜 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추웠던 터라 훈훈한 박물관이 반가웠다. 유물도 보고 몸도 녹일 수 있어서 좋았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사 음식과 재료를 보관하던 곳이 남아있는데, 여기는 그중 하나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종묘 등의 입구에는 가마나 말에서 내려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가라는 표시인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경기전 입구에 있는 하마비는 다른 곳보다 섬세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가이드 시간에 맞춰서 급하게 들어오는 바람에 하마비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나갈 때 살펴보려고 했는데, 그새 잊어버렸다. 다음에 가면 유심히 봐야겠다. 혼자 경기전을 관람했다면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았을 텐데 가이드와 함께 돌아다니며 안내를 받으니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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