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우리들 모두의 중학생 시절
관람하기 전 '여중생A'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주인공들의 풋풋한 모습과 제목이 잘 어울렸다. 아마도 영화와 함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만한 로맨틱 코미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랐다. 과거를 회상한 것은 맞으나 밝은 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소 무겁게 보았지만 마지막에는 따뜻함을 안고 극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한 아이가 '여중생A, 학교 옥상에서 추락'이라는 헤드라인이 적힌 신문을 들고 있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장미래'라는 한 중학생 여자아이의 생활이 그려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사에서 A와 B로 불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유명인일 경우에는 사이버 탐정대가 나서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댓글로 밝혀내기도 하지만 정확히 알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속사정은 더 알기 힘들다. 이 영화에서는 '여중생A'라고 불렸던 아이의 삶을 들여다본다. 신문기사는 사건의 단면을 보여주는 점과 같다면, 영화 속 이야기는 그 점과 점을 이으며 연결하는 선과 같았다.
미래의 아빠는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으며 엄마는 지쳐있었다. 내향적인 성격의 미래는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 썼지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런 미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게임이었다. 그 안에서는 함께 모험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앞장서서 적을 물리치며 의리를 뽐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게임마저 곧 폐지될 위험에 처했고 친구들은 하나둘씩 탈퇴를 했다.
현실에서 친구도 생기고 같은 반의 남자아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혹시나 하는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미래에게 찾아왔고 그런 상황을 보면서 한없이 답답했다. 결국, 그래서 미래는 옥상에서 몸을 내던질 결심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사이좋게 하교하는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저 아이들 사이에도 예전에 내가 학교 다녔을 때처럼 그들만의 힘겨루기가 있을까 하며 궁금해진다. 돌이켜보면 학교는 냉정한 사회를 축소시켜놓은 곳이었다. 다 같이 잘 지내는 때도 있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 어느 누군가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아이가 '요새 좀 지루한데, 누굴 좀 따돌려볼까?'라고 하는 말에 식겁해서 지금까지 기억이 난다. 피해자는 매일 밤마다 베겟머리를 적시고 아침마다 발에 사슬을 묶은 기분으로 등교를 할 테지만 가해자에게는 그저 심심풀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가해 학생 주변에는 '나는 아니야'라는 안도감과 '혹시 내가 쟤처럼 될지 몰라'라는 불안감으로 더 열심히 따돌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따돌림은 마치 수건 돌리기와 같아서 한 명이 벗어나면 다른 한 명이 당했다. 중학교에는 순수하면서도 멋모르는 데서 나오는 소소한 웃음거리 외에도 이런 어두운 면이 분명 있었다. 이 영화는 그때의 서늘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도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한 친구와 뒷담화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같이 맞장구를 치며 험담하던 그 친구는 당사자에게 내 말만을 전달했고 당연히 화가 난 아이는 전략적으로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친구들을 하나씩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으며 내 책상 서랍 속에 자신의 샤프를 넣어둔 후 도둑으로 몰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이 샤프 내가 가져간 거 아니야'라고 떳떳하게 말할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마도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체념에서 그랬던 것 같다. 아픔을 겪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뒷담화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시간이 지난 후 고등학교에서 나를 따돌리던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였기 때문에 일부러 같은 학교로 진학하기도 어려운데 용케도 인연이 그렇게 되었다. 그때는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고 반장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별 시답잖게 생각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때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여기서, 나를 괴롭혔던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았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나에게 두 가지 깨달음을 준 셈이다.
미래는 게임에서 만난 친구를 찾아 나섰다. 현실에서도 이 친구, 재희에게만은 게임에서처럼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재희도 밝은 모습과는 다르게 마음의 상처가 많았고 미래처럼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이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지워나가며 즐겁기도 했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항상 둘과 함께 했다.
책을 좋아하는 미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A라고 불리는 한 아이와 여우의 우정 이야기였는데 재희와 미래를 많이 닮아있었다. 소설 속에서 A는 죽을 듯하다 살아났지만 다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A의 운명은 그 소설을 쓰는 미래에게 달려있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어찌하지 못하는 환경적인 요소도 있지만 큰 틀은 결국 각자의 삶을 써 내려가는 개인의 몫이다. 한 가지 선택 후에 생기는 결말에 맞추어 또 다른 선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미래는 소설 속의 A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었으며 여우와 친구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는 미래에게는 일희일비가 곧 살까 죽을까의 문제로 연결되었다. 다행히 결말은 희망적이었고 소설은 끊기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이다"
- 찰리 채플린
당연히 신문기사에 나온 '여중생A'는 미래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영화를 보다가 혹시 다른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쯤에는 집도 부유해 보이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던 반장이 '여중생A'가 아닐까 싶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여중생A'는 그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건너 들으면 마냥 행복해 보이던 사람들도 직접 만나서 속사정을 들으면 어려움은 한 가지씩 있기 마련이다. SNS에 있는 찰나의 사진이 그 사람 삶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이던 시절, 친구가 내 미니홈피를 보고는 '너는 항상 즐거운 것 같다'라고 말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장문의 글을 적지도 않았고, 신난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세상 모든 이모티콘과 말투를 다 끌어다가 쓰는 것이 습관이던 때라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물론 즐거울 때도 있지만 어떻게 항상 즐겁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의 소식을 전해 듣거나 SNS를 보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 이 생각을 떠올리면 다시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
멀리 담 모퉁이에서 어린 나를 훔쳐보면
도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적어도 웃음이 날 것 같진 않다.
할 수만 있다면 꼭 한 번
가슴 가득 따듯하게 안아주고 돌아오고 싶다.
- 오태호, '비 갠 아침 바람의 향기' 중에서
예전에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에서 어른이 된 선덕여왕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어린 날의 자신을 꼭 껴안아주는 장면을 감명 깊게 보았다. 그 이후로 미래인을 만난다면 어떨까, 혹은 어릴 적의 나에게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아직은 나도 삶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미래보다는 조금 더 살았기 때문에 미래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싶다. 그러면 어린 나를 따뜻하게 달래주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내 어린 시절과 미래의 삶이 똑같지는 않아도 나와 미래 모두 '여중생A'였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웹툰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웹툰을 보고 나서 이 영화를 접했다면 또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아픔과 슬픔, 따뜻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끝이 완전히 마무리된 개운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여중생 시절은 아직 더 많은 미래가 남은 나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결말이 더 어울린다. 영화 속의 주인공, 미래가 앞으로 점점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상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