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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Oct 31. 2016

[도서] 여백이

작은 생명이 가져다준 변화

'여백이'는 봉현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다. 형제들 중에서 유난히 약했던 아기 고양이를 데려와 함께 지내는 일상을 사진과 그림, 글로 정리한 책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여백아, 여백아'라고 부르면 삶에 여백이 생길 것 같아 이름을 '여백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외롭게 자신만을 지켜오던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를 마주하고 마음을 전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긴 듯 짧아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할 수 없기에, 내 옆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곤히 잠들어 있는 저 작고 소중한 생명과 함께하는, 너와 내가 함께하는 이 반짝이는 삶의 순간을 이렇게나마 작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 p.6

나도 강아지를 키우며 이런 이유로 사진을 참 많이 찍어둔다. 정리할 때 보면 비슷한 사진이 수두룩하게 있는데도 내 눈에는 모두 다르게 예뻐서 어느 하나 삭제를 할 수가 없다. 같이 지내고 있는 총총이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적응하기가 꽤 힘이 들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었고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정을 붙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의 용기도 필요했지만 총총이도 나를 받아들일 용기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여백이가 아플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디가 아파요’, 단 한 마디만 해주어도 좋을 텐데. - p.126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 중 하나다. 어디서 보니 강아지는 인내심이 많은 동물이라 심하게 아프기 전까지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눈에 띄도록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 동안 참았던 걸까, 안 좋은 것이 이미 꽤 진행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처음 데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가 데면데면할 때였는데 총총이가 갑자기 배탈이 났다. 경험이 없어서 어린 강아지가 혹시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걸 보더니 총총이가 다가와서 내 얼굴을 핥아주었고 서로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총총이가 이전보다 더 잘 따르기 시작했고 나도 키우고 있는 강아지에 대한 소중함을 강하게 느꼈다.




꾸준하게 운동을 해야겠다. 생활을 위해 작업을 하고 여백이랑 재미나게 살아가려면 아프지 않아야 하는 게 최우선이니까. 물론 돈도 많이 벌어야 한다. 돈이 좀 모인 통장을 보면 발걸음이 가벼운 게 휘파람이 절로 난다. 잔고가 바닥난 통장을 보면 진짜 많이 아픈 기분이다. 생활이라는 무서움. - p.92

몰티즈인 총총이는 태생적으로 다리가 약한 종이라는 말을 듣고 근육을 만들어줘야겠다 싶어 매일 산책을 한다. 날씨가 안 좋을 때에는 집에서 함께 공놀이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반려동물들은 주인을 참 부지런하게 만든다.




네가 곁에 있다는 당연한 행복을 깨닫는 순간, 무섭도록 두려워진다. - p.183

한 해 한 해가 지나갈수록 두려운 것이 많아진다. 한 살 더 늘어나는 나이, 예전 같지 않을까봐 걱정되는 피부와 체력 외에 총총이를 항상 떠올린다. 이별의 준비가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느 날 훌쩍 사라질까봐 겁이 난다. 무방비 상태의 이별이 참 두렵지만 지금 총총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예전의 나는 헤어짐에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그에 대비라도 하듯 마음을 아끼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가 어떻게 되든 우선 지금 나의 마음에 충실하고 싶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데 총총이가 큰 몫을 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외로워지고 공허해지는 순간마다 나를 어찌 놓아두어야 할지 모르는 때마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펴고 노트북에 한 글자씩 타자를 치며 하얀 것에 조금씩조금씩 무엇이든 채워나간다. 대단치도 위대하지도 않은 일상이지만 지금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누구를 그리워하며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지를 기록하다보면 언젠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어리고 어리석었구나,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대단치 않은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흔들리고 있다. - p.188

이 책에는 여백이에 관한 이야기 외에 작가의 생각도 담겨 있다. 어른이 될수록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수의 생각이 정답처럼 자리 잡아 그에 따르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솔직한 마음을 맞닥뜨리기가 겁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에 하나씩 끄적이다 보면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고 내 마음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 과거에 쓴 글을 읽으면 부끄럽기도 하고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럴 때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걸 느낀다.




아직 쓰지 못한 글과 그리지 못한 그림.
아직 벌지 못한 돈과 읽지 못한 책.
아직 해내지 못한 성공, 아직 잊어버리지 못한 사랑.
아직도, 당신에게 하지 못한 말.

그따위가 떠올라서 더욱 잠 못 드는 시간.

몇 년 전 밤과 변한 것 하나 없이 여전히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뭘 먹고 살지.
뭘 하고 살지.
사랑할 수 있을까.
변하지 않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뭐하고 있는 걸까.

성공의 기준에 따른 초조함과
잘나가는 지인에 대한 질투와
게으른 자신에 대한 자책,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의 불안감.
사랑받는 나로부터의 경멸감,
가난한 삶에 대한 초라함이 진해진다.

잠이 든다는 것은, 그런 고통을
아주 잠시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다. - p.200

과거 또는 현재에 이따금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의 글로 읽으니 반가웠다. 이렇게 간단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반려동물을 데리고 있는 사람과는 빨리 친해진다.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처음 본 사람인데도 친근하고 이야깃거리가 샘솟는다. 그래서 작가와도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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