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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Feb 24. 2017

목숨이 위태로워

부치지 않은 엽서

대성리에서 인도가 없는 도로의 갓길을 걸은 적이 있어. 한밤중이었고, 차가 쌩쌩 달렸어. 엠티에 늦게 합류하는 동기가 버스를 잘못 내려서 데리러 가는 중이었어. 고작 한두 정거장인데 꽤 떨어져있어서 오래 걸어야 했어. 그 길을 걸으면서 과대에게 목숨이 위태로워, 라고 말했어. 과대도 위험하다 조심해, 덧붙였어. 나는 여기서 차에 치여죽을 운명이라면 집에 있었어도 가스가 폭발해서 죽었을 거야, 라며 우스갯소리를 했어. 속으로도 사실 언제 죽어도 좋아, 생각했어. 그런 생각을 꽤 자주 해. 언제든 죽어도 좋아, 대신 오래 죽어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건 싫으니까, 라고.

인도 여행 한 달 째.  꽤 여러 번 기차를 탔는데 그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흔들리는 기차 안이야. 표를 늦게 끊어서 그런지 자리도 칸의 맨끝이야. 출입구랑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어. 다행히 이번 기차에서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많이 쓰진 않은 모양이야. 원래 기차가 출발한 지 좀 되면 꼭 냄새가 나더라고. 오늘은 그렇게 심하지 않네.


인도는 어쩐지 교통수단들이 항상 문을 열고 다녀. 버스도 그렇고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기차도 그래. 까딱하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문, 저 문을 통해서 실수로 떨어지거나 일부러 뛰어내리면 크게 다칠 거야. 옆에 기차라도 지나가면 바로 죽지 않을까. 아무튼 이곳에서는 '쉽게' 죽을 수 있을 것만 같아.


제일 자주타는 오토릭샤(툭툭)는 원래 문이 없는데 엄청 난폭운전을 해. 방향을 꺾을 때마다 떨어질까봐 긴장하게 돼. 사이클릭샤도 어디든 붙잡지 않으면 언제든지 굴러떨어질 수 있을 것 같이 생겼어. 릭샤에서 떨어진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이런 식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 곳 같다는 게 내 느낌.


교통은 또 어떤데. 신호등도 없고, 간혹 있어도 안 지켜. 그냥 내가 가는 게 길이야. 안전거리도 없어. 교차로에선 항상 목숨을 거는 느낌이었어. 실제로 걸어서 건너다 바이크를 탄 사람에 몇번 치이기도 했어.(다행히 바이크는 아니었어.) 내가 가면 그게 신호고, 길이야. 막무가내로 가야 돼. 다만 모두가 막무가내로 간다는 것.

어젠 트래킹을 했는데 산에도 길이 없더라. 내가 가는 곳이 길이라고 믿는 수 밖에 없어. 거기서도 발 헛디디면 죽겠는 거야. 무슨 산사태 일어난 것처럼 생긴 곳을 두 번 지나고, 벽에 옆으로 딱 붙어서 한 사람씩 지나가야하는 낭떠러지 구간을 지나면 정말 조그만 폭포가 나왔어. 내가 이걸 보려고 그 길을 왔나 싶어서 허무하기도 했어.


아무튼 '안전'이란 게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매일매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이 곳.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어. 그것도 엄청 많이 살아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지는 몰라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걸 수도 있겠다. 다만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은 생을 꼭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죽지 않는, 다치지 않는 나름의 방법을 알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나도 얼마 전 사람들을 따라 선로를 건넜어. 차가 쌩쌩 달리는 교차로를 여러 번 지나다녔고, 문을 열고 달리는 버스에 매달려서 탔어.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어. 나는 이를 꽉 물고, 손잡이를 꼭 잡아. 눈은 부릅 떠. 그러면서 살아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를 느껴. 나는 언제든 죽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인도에서도 죽지 않았어. 나는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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