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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Jul 05. 2016

랄랄라랄라

사람또사람과 루싸이트 토끼의 파일럿 공연을 보고

@재미공작소, 6.26 일요일 오후 4시


 6월 26일 일요일, 날씨는 쨍쨍함 그리고 무더움. 문래동이 경기도인지 서울인지도 몰랐었던 나는 생각보다 문래가 가깝다는 것에 놀랐다. 왜 갔냐면, 문래에는 재미공작소가 있다. 'Studio Zemi'. 트위터에서 소식만 전해듣던 곳인데 각종 공연과 전시, 강연 등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사람또사람과 루싸이트토끼의 파일럿공연이 있었다.


 나는 미리 표를 사두지 않으면 아무리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공연을 해도 일요일에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예매해두길 정말 잘했어, 스스로 칭찬하며 공연 오 분전에 재미공작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놀랐다. 관객이 나와 친구 포함 스무 명 남짓. 밖은 푹푹 찌는데 안은 시원해서 여러 모로 좋았다. 음료수라도 사올걸, 하는 나의 말에 친구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밖으로 나가 바로 옆에 있는 공정무역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다. 커피 맛도 좋았고(by 커피무식자) 컵에 네임펜으로 "I'm a Fair Trader."라고 어설프게 쓰여있었는데 덕분에 나도 어설프게나마 '공정무역자'가 된 것 같아 조금 뿌듯해했다. 그걸 사서 돌아왔더니 거의 바로 공연이 시작됐다.


 루싸이트 토끼도 좋았지만 사람또사람에 대해 쓰고 싶다. 사람또사람의 공연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너무 좋았기 때문에. 사람또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같이 여행갔을 때 D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왜 그 모든 것들이 만족스럽지 않을까. 가만히 보면 내가 특별히 잘난건 하나 없는데. 나는 왜 그 모든 것들이 찝찝하기만 할까. 생각해보면 내가 그리 깔끔한 편도 아닌데"로 시작하는 가사에, D는 너는 왜 이런 노래를 듣고 그러냐, 하면서 걱정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당시에(는 더) 우울했고, 자학적인 농담도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내 "하지만 그래 정말로 그래 조금은 특별하단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하지만 그래 정말로 그래 우리 하나 둘이 셋이 모두 다 특별할지도 몰라 몰라 몰라"로 이어지는 가사에 다행이야, 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더랬다.


 이제 이번 공연 때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노래 중에, 지금 제목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첫 번째는 <399>다.



1. 사람또사람, <399>

뭔가 소중했던 걸 뭔가 중요했던 걸
뭔가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에
조금 복잡해지네

하지만 난 오늘도 그래
아무래도 그냥 잠들 것 같아
어제 오늘 내일도
다를게 없어 그런가 보다

오늘도 이렇게 흘러갈 수 밖에
오늘도 이렇게 외로울 수 밖에


 시간을 꼭 붙잡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시간은 왜 항상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른건지. <399>는 버스 번호이고, 그 버스 위에서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곡이라고 한다. 뭔가 소중했던 것, 중요했던 것을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 일요일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노래가 나올 때의 그 기분. 그 기분을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느껴왔다. 나는 많이 괴로웠다. '오늘도 이렇게 흘러갈 수 밖에, 오늘도 이렇게 외로울 수 밖에'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의 영역이다. 아직도 나는 '어제 오늘 내일도 다를게 없어 그런가 보다'하고 미련없이 말하지 못한다.



2. 사람또사람, <꿈>


 미발표곡이었구나. 나이가 들고 이제는 꿈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만난 뒤 쓴 곡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우리 꿈이 있었는데, 하면서. 24살의 나와 내 친구들은 벌써 그렇게 말한다. 꿀 빨고 싶은데, 대충 먹고 살고 싶은데, 라고. 우리는 꿈이 없다. 뭘 해도 안 될 거 같고 그게 그걸 것 같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먹고 살 수 없을 거 같고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빨리 늙어버린 걸까?



3. 사람또사람, <우주>

오늘 같은 밤이면 이 거대한 우주 속에
너와 나 단둘만이 남았으면
복잡할 필요 없이 헤매일 이유 없이
너와 나 둘이서만 남았으면

마음 속에 아픈 것들은 모두 다 잊어버리고
머릿속에 나쁜 것들은 모두 다 지워버리고
복잡할 필요 없이 너와 나 둘이서만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면


 만약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당신을 찾아 헤매지 않게, 언젠간 만날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지 않게, 오늘 당장 너와 나 둘이만 남았으면. 그래서 복잡할 필요 없이 내가 당신에게 곧장 갈 수 있었으면. 불이 하나 둘 꺼지는 밤이라면 그런 상상 쯤은 해도 되지 않을까.


4. <엄마>


 모두에게는 다른 엄마가 있다. 나는 모두에게 같은 엄마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들을 싫어한다. 누구나 엄마가 있으니까 엄마를 노래하거나, 그리거나, 말하면 누구나 같은 기분을 느낄 줄 아는 그런 것들.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들이 싫다. 이 노래는 그렇지 않았고, 좋았다. 이 사람은 이 사람의 엄마에 대해 노래했고, 나는 우리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아주 부족한 엄마지만 아주 최선을 다한다. 나는 아주 부족한 딸이고 일말의 최선도 다하지 않는다. 최선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맞추고 있었다. 방법이 나에게 맞지 않고 있을 뿐, 그건 왜냐면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 그렇다면 오늘부터는 노력이라도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드는 노래였다. 이것도 미발표곡.



5. <랄라라랄라>


 이 노래는 부르지 않았지만 끝을 이 노래로 맺고 싶다. 루싸이트 토끼가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세상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나를 구석으로 몰아 넣네
어쩌면 내가 조금은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이제 모르겠네
우리는 어쩜 처음부터
틀려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네

랄랄라랄랄 내 눈과
랄랄라랄랄 나의 귀를
랄랄라랄랄 모두모두 막고
랄랄라랄랄 걸어갈 뿐이네

사실 나도 내가 원하는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니가 원하는 그런 것들하고는
조금은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네
랄랄라랄랄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요
랄랄라랄랄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아요
난 스스로 스스로
스스로 구원할 테니까


 구원이라는 단어를 예전에는 참 거북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단어가 있다는 것이 참 좋은 것 같다. 요즘 내 삶이 조금 찌질해보이죠. 내가 좀 힘들어 보이죠. 내가 조금은 옳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이제는 모르겠네요. 사실 나도 내가 원하는게 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당신이 원하는 그런 것들과 다르다는 것 쯤은 알겠네요.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요.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아요. 나는 스스로 나를 구원할 거예요.

 그래 우리는 모두가 찌질함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찌질함을 인정하는 것이 조금 덜 찌질해지는, 세련된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람또사람은 찌질한 노래들을 부른다. 그래서 덜 찌질해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스스로 나를 구원하겠다는 말까지 하다니, 이 시대의 멋짐이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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