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톰슨 <담요>를 읽고
담요가 연상시키는 느낌들은 따듯함, 포근함. 나에게는 답답함과 퀴퀴함도 포함된다. 작품에는 두 개의 담요가 등장한다. 하나는 유년 시절에 동생과 함께 덮던 담요, 다른 하나는 연인인 레이나가 만들어 준 담요다. 첫 번째 담요는 동생과의 추억, 당시 느꼈던 안정감 등을 담고 있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구속, 유년시절의 수치심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담요는 레이나의 사랑과 그와의 기억에 더불어 두 가정의 엄격한 종교적 가치, 레이나와의 갈등도 담고 있다. 크레이그는 두 담요를 모두 떠난다. 레이나의 담요를 골방에 넣어두는 행위는 상징적이다. 크레이그는 그로부터 레이나를 묻어두고, 동시에 전도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님 집에서 떠난다.
아침에는 담요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나'의 일상이 시작된다. 가족, 연인과 같은 것들은 담요다. 나에게 안정감과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가 된다. 담요 밖 추운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 안에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그것의 밖에서 비로소 내가 된다. 담요는 필요하고(특히 추운 겨울이라면), 크레이그도 세 번째, 네 번째 담요를 찾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따뜻한 만큼 나를 구속한다. 나는 그것에 상처를 받고, 그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그것들은 매우 불필요하다. 가끔은 담요 밖으로 나와야 한다. 또 다시 새 담요를 찾게 되더라도.
*현진건의 <빈처>에서 '나'가 아내를 묘사하는 표현.
감정을 글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나에겐 익숙치 않아서, 굉장히 신기하고 새로웠다. 이런 방식으로도 솔직해질 수 있구나.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무서웠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와 같은 감정들이 컷 속에서 다양한 표현을 통해 다가왔다. 꽤 많은 만화책을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픽 노블의 세계는 또 다른 것 같다. 작가의 솔직한 표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진취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 놀라웠고, 나도 나의 과거를 이렇게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