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의개미 Jul 04. 2016

왜 나는 당신의 역사가 아닌가

서대경의「봄, 기차」와 황유원의「바라나시 4부작」을 읽고

서대경의「봄, 기차」


지나가요 당신의 지나감이 내는 소리로 거리가 넓게 느리게 무성해

 왜 나는 당신이라는 기차의 역사가 아닌가. 당신은 나를 지나간다. 다섯 시에 지나가고, 자정에 지나가고, 여섯 시에도, 일곱 시에도 지나간다. 끊임없이 나는 당신을 떠올린다. 나의 수없는 호출에도 당신은 머무르지 않고 지나간다. 상상 속에서도 당신, 못됐다. 현실에서는 내가 당신을 지나간다. 당신에게 말을 걸거나 손을 내밀지 못하고, 내가 아닌 존재로 뒤덮인 당신을 지나간다.


 지나침은 나를 두들겨 댔다. 쿵쿵. 혹시나 하는 나의 기대로 심장이 쿵쿵. 당신의 말과 시선을 나를 향하지 않았는지. 당신의 지나침이 쿵쿵. 나는 외로웠다. 당신의 지나감은 너무나 잔인해서 그 빛살을 주사했더니 검은 쥐도 픽 쓰려졌다. 나도 외로움에 죽어버렸다. 거짓말. 당신의 지나침은 나를 키웠다. 아직도 난 또 멀쩡히 당신을 지나가고, 나를 지나가는 당신을 바라본다. 다시 한번, 당신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리 둘이 마주 보고 웃는다. 너무 벅차서 이게 사실이야, 하고 묻는 순간 당신은 또다시 나를 지나간다. 존재로 뒤섞이지 마. 서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 마. 지나가지 말아요, 나의 간절한 바람은 허공에 흩어진다.


 '지나가지 말아요'는 차라리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당신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거짓말이다. 당신이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동경한다. 그 마음을 놓지 못해 나는 끊임없이 두들겨지고 있다. 언제쯤 당신이라는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를 철거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왜 당신의 역사가 아닌가.



황유원의「바라나시 4부작」

누가 뭐래도 하늘엔 줄이 없어
줄 달린 연들이 어쩔래야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어차피 우린 모두 하늘에 빠져 익사하는 아이들


 연은 나의 마음들이다. 나의 말들, 약속들, 인연들이다. 나는 하늘을 점령할 듯 마음을 날려댔다. 너무 많은 연들을 띄웠기 때문에 연줄은 서로 뒤엉켰다. 그러나 아직도 줄을 놓는 법을 알지 못한다. 줄을 놓지 않으면 하늘에 빠져 익사할 텐데도.


 나는 종종 혼자 여행을 갔다. 연을 놓으려고 그랬다. 나는 그래서 가장 먼 곳으로, 당신이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당신이 가보지 않을 곳으로 가려고 했다. 기왕 떠난다면 더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수장시켜 떠나버렸다고 믿은 연은 몇 번이고 다시 되돌아왔다. 내가 달려 나가 줍기도 했고, 남이(어떤 노래나, 영화나, 말이나, 음식이나, 어쨌든 무엇인가가) 주워다 주기도 했다. 당신을 버리려고 떠났는데 거기서 내가 한 건 겨우 당신에게 엽서를 써서 부치는 일이었다. 다른 이에게도 많은 엽서를 썼지만 어쩔 수 없이 당신에게 가장 많이 부쳤다. 몇 장은 부치지 않았다. 당신의 하늘 아래 서서 몰래 올려다보고 싶었다. 그치만 나는 아주 멀리 와있었다.


 누군가는 나를 날리며 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은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날리고 있겠지만. 어쨌든 우린 다른 장소 다른 시간 속에서 하늘로, 하늘로, 익사하고 있다. 언제쯤 노인이 될까. 언제쯤 하늘의 바람을 모두 쫓아내어 연을 만신창이로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줄 놓는 법을 알 수 있게 될까. 늘 오랜만인 당신. 나는 또, 이 풍경을 보고 있자면 누구나 누군가에게 엽서를 한 장 쓰고 싶어 진다, 고 말하겠지. 사실 언제든 어디서든 당신에게 쓰고 싶었다, 고 언젠간 말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